2019年09月17日

【북일국교정상화】가네마루 신 전 자민당 부총재와 문선명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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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우호 야마나시현 대표단, 평양(9/14)
日本語
고 가네마루 신(金丸信) 전 자민당 부총재의 차남인 가네마루 신고(金丸信吾) 씨가 이끄는 '북일우호 야마나시현 대표단' 60여명(조총련 포함)이 14일부터 4박 5일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 중인 가운데, 16일 아베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나 자신이 조건을 달지 않고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마주 보겠다. 다양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결단력 있게 행동해 가겠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오는 28일부터 내달 3일까지 북한에 대표단을 보내 의료 현장 시찰과 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어 회담 재개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90년대 초 북일수교 교섭을 주도했던 가네마루 전 부총재는 90년 9월 다나베 사회당 대표 등과 함께 북한을 방문하여 김용순 북한 노동당 대표와 더불어 3당 공동선언을 채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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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가네마루 부총재, 김일성 주석, 다나베 대표

공동선언은 '36년간 조선인민에게 끼친 불행과 재난 그리고 전후 45년간 입힌 손실에 대한 사죄 및 배상' '조기 국교정상화' '양국 직항로 개설' '재일조선인 법적지위 보장' '여행대상국 중 북한 제외 항목 삭제' '조선은 하나이며 남북대화를 통한 평화통일은 조선인민의 민족적 이익에 부합됨을 인정' '평화롭고 자유로운 아시아 건설과 핵 위협 제거' 등 8개 항목.

이듬해 2월 가네마루 씨는 둘째아들 '신고'를 세 번째로 평양에 파견해 '북일수교를 앞당기는 첩경은 핵사찰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김일성 주석에게 전달했다.

당시는 북한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론이 대두되고 있던 때였다. 그러던 중 동년 12월 통일교회 문선명 선생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과 단독회담을 갖고 '핵에너지는 평화적 목적에만 사용되어야 하며, 북한은 순리적인 국제핵사찰을 받을 것' 등 4개항의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것을 계기로 가네마루 씨는 92년 3월 문선명 선생을 일본에 초청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3월 20일 가네마루 씨가 도치기현 아시카가시에서 연설하던 중 우익으로부터 총격을 받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가네마루 신 씨 저격사건

객석 넷째 열에 앉아 있던 남성이 달려나가며 약 5미터 지근 거리에서 권총 세 발을 발사했다. 그는 도쿄의 우익단체 소속이었다. 가네마루 씨는 다행히 부상을 입지 않았으나 한 발은 연단에 명중돼 2장의 두꺼운 판넬을 뚫고 연단 옆에 떨어져 있었다.

총리와 각료, 당 3역이 연설 중에 저격당한 사건은 전후 처음 발생한 일이었기 때문에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가네마루 씨는 북한과 공동선언 체결 이후 '굴욕 외교'라는 비판을 받으며 자택에 화염병이 투척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 날은 삼엄한 경비 속에 약 50명의 경찰관이 배치돼 있었다.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중에서(1992/4/3)

"가네마루는 나하고 만날 약속을 하고 나를 초청한 사람입니다. 만날 약속을 한 날로부터 1주일 후에 총격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5미터 거리에서 세 발 쏜 총알이 몸에는 하나도 스치지 않고 어디로 다 가버렸어요. 그 사람이 죽었으면 내가 일본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사!

일본 국회의원들은 그 사실을 알고 '정말 그렇구만. 문 총재가 어떤 양반이기에 문 총재를 만나지 못할까봐 죽을 가네마루를 살려주었단 말이냐'라고 하더라구요. 가네마루를 살려 준 것이 가네마루를 사랑해서 살려 준 것이 아니라, 문 총재를 만나지 않으면 일본과 아시아에 사고가 터져 좋지 않겠으니 문 총재 때문에 살려준 것입니다."

문선명 선생은 미국에서 탈세 혐의로 1년 이상의 실형 판결을 받은 전력 때문에, 그때까지 일본의 '출입국관리 및 난민인정법'에 따라 일본에 입국할 수 없었다. 그런데 '동북아의 평화를 생각하는 모임'이라는 국회의원 집회에 참석한다는 명분 아래 특별조치로 14년 만에 입국허가가 내려졌던 것이다.

그 배후에는 가네마루 씨의 법무부에 대한 정치적 압력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가네마루 씨는 '정계의 오야붕'이라고 불릴만큼 자민당 최고의 실력자였다. 1972년 총재 선거에서 다나카 가쿠에이를 밀어 '중일국교정상화'를 성사시켰고, 이후 30조원 이상의 중국에 대한 ODA 개발원조가 실시되었다. 1982년 총재 선거에서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 쓰고 나카소네 야스히로를 밀어 당선시키기도 했다.

이윽고 3월 31일 문선명 선생과 가네마루, 나카소네의 회담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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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가인 아벨과 같은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지성세계를 대표하는 나카소네이고 한 사람은 가네마루입니다. 이번에 가서 이 두 사람을, 가인 아벨을 하나 만들어야 됩니다.

문 총재가 이북 갔다 온 사진첩을 보여 주니까 가네마루가 하는 말이 '하루하루 생사지경을 헤매면서 가족을 만나기를 바라는 1천만 이산가족을 생각하며 가슴아파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볼 때 눈물이 쓱 돌더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 양반이 하는 말이, '내가 1천만 남북 이산가족을 하나 만드는 데 있어서 문 총재와 함께 하나되어 하겠습니다'라고 결의를 표명했습니다.

지금까지 일본은 서구사회에 투자해왔습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돈 벌어 가지고 서구사회에 투자했지만, 그들이 법 조항 하나만 바꾸면 다 빼앗긴다. 그 돈이 먼저 아시아로 안 가면 일본은 망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직접 중국에 투자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의 경제를 먼저 부흥시킨 다음 아시아로 진출하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인데도 불구하고, 일본은 그것도 모르고 자기들끼리 다 해먹겠다고 야단치고 있는 것입니다. 해 보라는 거예요, 나라 꼴이 어떻게 되나" 하고 질책했습니다.

이 때 문 선생은 북한에 1조원을 지원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문 선생이 일본 입국이 불가능한 기피 인물이라는 것과 북한에 대한 보상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일본의 우익세력, 북일수교에 대한 한국 정부의 부정적 태도, 북한의 핵개발 의혹,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본에 대한 미국의 압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일본 정부차원의 북일수교 교섭은 1992년 5월까지 8차례 실시됐으나 아무런 성과 없이 중단되었다. 더우기 북한의 미사일 실험과 간첩선의 일본 영해 침범 등으로 북미 관계는 전쟁 일보 직전까지 치달았다. 또한 가네마루씨는 5억엔의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발각돼 부총재직을 사임하고, 이듬해 3월 탈세 혐의로 체포되었다.

가네마루 씨가 실각하자 나카소네 씨는 북한과 일본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문 선생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문 선생은 일본에 입국하지 못했으며 (2010년 미국 정부를 움직여 일본 정부에 압력을 가하자는 시도가 있었으나 일본 통일교회가 응하지 않아 실현되지 못함), 19년째였던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M9.0의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일본은 인명 피해 2만 명 이상, 재산 피해 최대 1000조원(방사능 처리 비용 포함)이라는 사상 최악의 피해를 입었다. (문 선생이 가네마루 씨에게 제안한 지원금의 1000배에 해당함.)

게다가 최고위험 수준인 '레벨7'을 기록한 후쿠시마 제1원전 1〜4 호기의 방사능 누출 사고로 인해 지금도 끊임없이 방사성 물질이 공기와 태평양 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어 사람들이 '입주'할 수 없는 지역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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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朝国交正常化】金丸信元自民党副総裁と文鮮明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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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朝友好山梨県代表団、平壌(9/14)
한국어
故金丸信元自民党副総裁の次男である金丸信吾氏が率いる「日朝友好山梨県代表団」60人(朝鮮総連含む)が14日から4泊5日の日程で北朝鮮を訪問している中、16日、安倍首相が日朝首脳会談を行う意向を改めて強調した。

安倍首相は「私自身条件を付けずに、金正恩委員長と向き合っていく。あらゆるチャンスを逃さないとの姿勢で取り組んでいく決意である」と述べた。日本政府は、来る28日から来月3日まで北朝鮮に代表団を送り、医療現場を視察し、医療支援方案を模索する計画も推進しており、会談再開への期待が高まっている。

90年代初めに日朝国交正常化交渉を主導した金丸元副総裁は、90年9月に田邊誠社会党代表と一緒に北朝鮮を訪れ、金容淳北朝鮮労働党代表とともに3党共同宣言を採択したことが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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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から金丸元副総裁、金日成主席、田邊誠代表

共同宣言は、「36年間朝鮮人民に与えた不幸や災難、戦後45年間朝鮮人民が受けた損失について、公式的謝罪及び補償」「早期国交正常化」「両国間直行航路開設」「在日朝鮮人法的地位保証」「旅行対象国から北朝鮮を排除する項目削除」「朝鮮は一つであり、南北が対話を通じて平和的に統一を達成することは朝鮮人民の民族的利益に合致すると認める」「平和で自由なアジアを建設するために核の脅威をなくす」など8項目。

翌年2月、金丸氏は次男の信吾を3度目に平壌に派遣し、「日朝国交を早める近道は核査察を無条件受け入れること」というメッセージを金日成主席に伝えた。

当時は、北朝鮮の核施設への米国の先制攻撃論が台頭していた時期であった。そんな中、同年12月に統一教会の文鮮明先生が平壌を訪れ、金日成主席と単独会談を行い、「核エネルギーは平和目的にのみ使われるべきであり、北朝鮮は国際核査察を受入れける」など4項目の共同声明を発表した。

これをきっかけに金丸氏は、翌年3月に文鮮明先生を日本に招待することになる。ところが、3月20日、金丸氏が栃木県足利市で演説中に右翼の銃撃を受けるという衝撃的な事件が起きた。

金丸信氏狙撃事件

客席4列目から男が前に進み、走りながら約5メートルの至近距離から拳銃で3発発射。男は東京都内の右翼団体の構成員だった。金丸氏にけがはなかったが、1発の銃弾が演台に命中。弾は2枚の厚い板を貫き、演台の近くに転がっていた。

首相や閣僚、党三役らが講演中に狙撃されたのは戦後初めだったので大きな衝撃を与えた。金丸氏の北朝鮮との共同宣言は帰国後「土下座外交」と批判を浴びて、自宅に火炎瓶を投げられる事件があった。そのため、このときの県警の警備も厳重を極め、約50人の警察官を配置していた。

文鮮明先生御言選集(1992/4/3)

「金丸は、私と会う約束をして私を招いた人です。会う約束をしたその日から1週間後に銃撃事件が起りました。しかし、5 メートル離れた距離で3発のうち1発も当たらなかったのです。もしそのときに死んだならば、私は日本に入国できなかったでしょう。神様のお陰様です!

その事実を知った日本の国会議員たちは、「本当にその通りだ!果たして文総裁はどんなお方なんだろう?文総裁に合わせるために死ぬ運命の金丸が生かされた」と言ったのです。金丸が生かされたのは、金丸を愛したからではなく、文総裁に会わなければ、日本とアジアに問題が起こるからです。文総裁のために生かされたのです。」

文鮮明先生は、アメリカで脱税により1年以上の実刑判決を受けていたため、それまで出入国管理及び難民認定法の規定で日本に入国できなかったが、「北東アジアの平和を考える会」という国会議員の会合に出席する名目で特例措置で14年ぶりに上陸許可が下りた。

その背後で金丸氏の法務省に対する政治的圧力により入国させたと言われる。当時、金丸氏は「政界のドン」と呼ばれるほど自民党最高の実力者であった。1972年総裁選では、田中角栄を押して「日中国交正常化」を成立させ、それ以降、日本から中国へ総額3兆円を超えるODAが実施された。1982年総裁選では、周りの反対を押し切って中曽根康弘を押して当選させた。

3月31日、文鮮明先生は金丸信、中曽根康弘と会談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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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には、カインとアベルのような人物がいますが、一人は知性界を代表する中曽根氏、もう一人は金丸氏です。今回行ったら、この二人、すなわちカインとアベルを一つに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金丸氏は、私が北朝鮮に行ったときの写真などを見て、「日々生死の境をさまよいながらも、家族に会う日を待ち望んでいる1万離散家族を思いながら胸を痛める文先生の姿を見て涙が溢れた」と話しました。

それだけ関心を持っている人だからです。彼は、「1千万南北離散家族を一つにするために、文総裁と一つになってやっていきます」と決意してくれました。

今まで日本は西欧社会に投資してきました。それで「君たちがお金稼いで西欧社会に投資したが、彼らが法律条項を変えればすべて奪われる。そのお金が先にアジアに来なければ日本は滅んでしまう」と言いました。

しかし、日本は中国に直接投資してはなりません。先に韓国を経済的に復興させてからアジアに向うことが神の摂理であるにもかかわらず、日本は何も知らず、自分たちで好き勝手にやろうとしている。やりたい放題やってみて、日本がどうなるかみてみなさい」と厳しく叱りました。

この時、文先生は1000億円規模の北朝鮮支援策を打ち出したと知られているが、最終的には実現されなかった。文先生が日本入国が不可能な忌避人物であるという事実と、北朝鮮への補償を頑強に拒否した日本の右翼勢力、日朝国交に対する韓国政府の否定的な態度、北朝鮮の核開発疑惑、そして何よりも、日本に対する米国の圧力などが複合的に作用していたものと思われる。

それ以降、日本政府の日朝国交正常化交渉は、1992年5月まで8回実施されたが、何の成果もなく中止された。さらに、北朝鮮のミサイル実験やスパイ船の日本領海侵害などで、米朝関係は戦争の一歩手前までエスカレートした。また、金丸氏は5億円のヤミ献金が発覚し、副総裁職を辞任。翌年3月、脱税容疑で逮捕された。

金丸氏が失脚した後、中曽根氏は北朝鮮と日本を結ぶパイプ役を文先生にお願いしたとされる。しかし、それ以来文先生は日本に入国できず(2010年、米国政府を通じて日本に圧力をかけるという働きもあったが、日本統一教会が動かず実現できなかった)、19年目となる2011年3月11日に発生したM9.0の東日本大震災により、日本は人命被害2万人以上、財産被害最大100兆円(放射能汚染処理費用含む)という史上最悪の被害を被った。(文先生が金丸氏に提案した支援額の1000倍。)

更に、最高危険段階「レベル7」を記録した福島第1原発の1〜4号機の放射能漏れ事故により、今でも放射性物質は空気中や太平洋に継続的に漏れており、人々が「入居」することができない地域になっ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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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기 완성급' 영적 시험 극복하는 길 → 확고한 '원리관' 확립해야

중심인물이 되려면 사탄보다 더 지독해야 합니다. 섭리적으로 중심인물은 다 실패했습니다. 예수까지도 실패했습니다. '장성기 완성급'을 넘을 때마다 역사했던 최악의 악령들 때문에 실패했다고 합니다.

최악의 세계의 악의 근원이 사탄인데 사탄이 나에게 올 때에는 하나님의 사자인 척하면서 별별 유혹을 다 합니다. 거기에 넘어가면 끝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중심삼고 정해놓은 원리관이 있으면 하나님이 와서 유혹해도 안 넘어가야 됩니다. 영인체는 남자가 여자가 되고, 여자가 남자가 되고, 마귀가 천사가 되고, 천사가 마귀가 되고 자기 마음대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인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변합니다. 내가 뜻(목적)을 이룰 때까지는 하나님도 변해서 나한테 나타납니다. 따라서 뜻을 놓고 한번 약속한 것은 하나님이 변해도 나는 변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도 유혹합니다. 아버님에게도 하나님이 사탄보다 더 지독하게 시험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도 편한 길 가라고 유혹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뜻 길을 가는 동안은 하나님에게 의존해서도 안 됩니다.

확실한 '원리관'이 없으면 안 됩니다. 특별히 지금은 영들이 제멋대로 활개치는 시기이므로 철저한 '원리관'이 없으면 넘어갈 수 없습니다. 항상 정해놓은 '원리관'에 근거해서 판단해야지 주변에 휩쓸리면 평생을 망칩니다.

절대적으로 세워놓은 '원리관'과 '섭리관'에 근거해서 판단해야지 '섭리관'에 역행해서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면 해와의 잘못을 또 다시 반복할 수 있습니다.

선한 길로 가려고 하는 자, 원리적으로 살려고 하는 자를 사탄은 언제나 유혹합니다. 조상이 와서 유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계가 뭐라고 한다고 해서 절대로 따라가면 안 됩니다. 정해준 '원리관'과 말씀에 따라가야지 영계에 따라 왔다 갔다하면 안 됩니다.

성적인 타락만이 타락이 아닙니다. '내가 했다'고 하는 순간, 바로 그것이 교만입니다. 그래서 노아도 실수한 겁니다. 아브라함의 실수도 자기 생각으로 비둘기를 안 쪼갠 것입니다.

아버님도 항상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는 마음으로 '교만'이라는 유혹을 물리친 것입니다.

【혈통신학】자체자각과 타락성근성

【사탄 극복】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창조주 하나님을 닮아】성인은 스스로 완성한다

【남3.26)

【양자택일】노예로 남을 것인가 왕이 될 것인가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곁에 두어라

【실력과 실적을 보여주자】등에 업혀 살 수만은 없다

【하심(下心)】낮은 곳에 머무는 '하나님의 심정(하심)

참모의 시대, 팀웍으로 비약한다

'중보자'로서의 신종족메시아

남북통일을 위한 초종교 파트너십과 영적 진화

【모심의 생활】좋은 것을 챙길 것인가 양보할 것인가

고난의 상속자•대신자가 되게 하소서

'탕감조건' 살아서 세울 것인가, 죽어서 세울 것인가

신종족메시아와 대속

이상상대와 참부모

신종족메시아와 자기 책임시대

축도의 의미

【붉은 원숭이의 해】천사장권 혹성 탈출

참어머님과 형진님의 7년 로정

선민의 혈통과 빈들의 삶

상대자가 자기보다 더 낫기를 바라는 사랑세계의 공식

【맞고 빼앗기 작전】극에 달하면 반전된다

【참평화의 길 Ⅴ】생명의 파수꾼

【현진님께 드리는 글】GPF '노블레스 오블리주' 앞장서야

【천일국 통일용사】'목계' 싸우지 않고 이긴다>

2019年09月16日

신령과 진리로 예배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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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희석 씨의 '김수로가 예수고, 그의 아들이 고구려 유리왕'이라는 주장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유리왕은 기원전 38년〜기원후 18년의 인물이고, 김수로왕은 기원후 42년〜199년까지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영통인에게 확인한 결과 김수로왕은 예수도 아니고 그의 혈통도 아니라고 합니다.

사실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너무 문자에 얽매이거나 영적인 면에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심령과 진리가 조화를 이룬 중용의 자세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송부웅 칼럼】안파견(安巴堅) 환인천제(桓因天帝)에서 고열가(高列加) 단군황제(檀君皇帝)까지
http://asianews.seesaa.net/article/459583134.html

【송부웅 칼럼】고구려 : 해모수 단군황제〜고주몽 단군황제
http://asianews.seesaa.net/article/459589323.html

【종교개혁 500주년】개신교, 다시 거듭나야 '예수님은 인간인가 하나님인가'
http://asianews.seesaa.net/article/4516676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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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年09月12日

일제 검·경찰과 문선명 선생의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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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경찰부(현 광화문 광장)

"하늘의 섭리는 맞고 뺏는 원칙하에 발전한다"

일제 초기의 무단 통치하에서 악명을 떨쳤던 헌병경찰제도는 1910년 9월 조선총독부가 설치되면서 탄생했다. 합병 1년만에 헌병과 경찰 수가 두 배로 늘어 총 1만 4천여명에 달했다. 당시 헌병경찰의 권한은 '긴급한 처분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재판절차 없이 경찰서장이나 헌병대장이 즉결 심판할 수 있는 사법권에까지 미쳤다.

1912년 조선총독부는 '조선형사령'을 발령해 검찰과 경찰이 구속·체포·수색·압수 등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에서는 판사에게만 인정되었던 권한이었다. 이런 막강한 권한은 무엇보다도 조선인들을 보다 쉽게 지배하고 독립운동을 훨씬 수월하게 억압하기 위해서였다.

일제시대는 검찰을 위한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형성된 검찰 문화가 지금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수사권, 기소·불기소권, 형 집행권까지 모든 형사절차를 장악하고 있는 우리나라 검찰은 전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일제시대 조선인들은 유독 경찰에 대한 원한이 깊었다. 독립운동만이 아니라 일상사까지 감시, 탄압함으로써 민중들의 생활에 피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우는 아이 달래던 '호랑이와 곶감'이 '에비! 순사 온다!'라는 말로 바뀌었다.

1944년 11월 문선명 선생은 일본 유학 당시 항일운동을 한 사실이 탄로나 악명 높기로 유명했던 경기도 경찰부(경기도 일원과 서울 4개 경찰서 관할)로 연행됐다. 이곳은 1946년 '고문 경찰' 노덕술이 수사과장으로 임명돼 악명을 떨친 곳이기도 하다. 

"열두 시간 가까이 고문을 받고 피를 토한 적도 있고 15분 동안 사람을 미치게 하는, 평생 잊지 못할 고문도 받았다. '쳐봐라! 그 몽둥이가 부러지나 내 뼈가 부러지나'하며 견뎠다. 한번은 14시간 동안 취조와 구타를 당해 기어서 20m도 가지 못할 만큼 몇 번씩 죽었다 깨어났지만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말씀선집 33권 p116)

이런 상황에서도 선생은 일신의 어려움을 면케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고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아 동료들은 더 이상 잡혀 들어가지 않았다.

광복 직후 한반도에는 2만6677명의 일제 경찰들이 있었다. 그 중 조선인은 약 40%인 1만619명이었다. 이들은 이승만의 비호 아래 친일파 청산을 주장하는 요인을 살해하거나 일제시대와 마찬가지로 감시와 통제 그리고 공안 탄압의 주역이 되었다.

또한 미군정은 행정 경험과 능력을 통한 안정적 사회 운영을 이유로 일제의 판·검사를 그대로 유지했으며, 그들은 사법개혁을 반대하고 기존 체제를 옹호하는 데 앞장섰다. 당시 미군정 법률가들은 남한 사법체제를 '부자와 우파들의 수호신'이라 불렀다.

한편 이승만은 '치안국 특수정보과'(1953년)에서 민간인 사회에 대한 사찰업무를 담당하도록 했다. (*특수정보과→중앙정보부→안기부→국정원)

1955년 7월 4일 문선명 선생은 유효원 통일교회 초대 협회장 등 4명과 함께 경찰 당국에 의해 체포돼 '치안국 특수정보과'(중부서)로 연행된 후 서울지검으로 송치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이 때 검사는 일제 검사 출신인 강서룡이었다.

7.4사건은 당시 이대·연대 등 대학가에서 열화처럼 번졌던 통일교회의 전도 열기에 놀란 기독교계 지도층과 이승만 정권의 일부가 주도한 대대적인 공작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통일교회의 최대 수난이었다고 볼 수 있다.

선생은 형무소장과 구치과장으로부터 천하대악의 주인공으로 온갖 멸시와 조롱을 받았으나 묵묵히 기도로 일관했다. 선생은 영적 직관력으로 형무관들의 비리사실을 지적하고 문책하곤 했으며, 수인들은 몽시 등으로 증거를 받고 선생을 귀한 분으로 존경하기 시작했다. 

약 2주가 지나자 형무소장과 구치과장, 간수들은 용서를 빌며 '선생님'이라 부르고 정중히 모시기 시작했고, 수박 참외 아이스크림을 대접하는 등 모든 편의를 제공했다. 또한 기결수들도 스승처럼 존경하며 비밀을 털어놓고 말씀을 듣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0월 4일 윤학로 주심판사의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선생은 무죄가 선고돼 석방됐고, 유효원 협회장은 벌금 5천환, 유효영, 유효민, 김원필 씨 등은 징역 8개월 형을 언도받았다. 

민족수난의 1번지인 서대문형무소는 지금까지도 온갖 소문으로 통일교회의 명예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현장이기도 하다.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일제당국의 핍박'과 '선생에 대한 기독교계 정부당국의 핍박'은 묘한 섭리적 인연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무죄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이 사건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던가? 민주사회에서 어떻게 소문만으로 종교 지도자를 구속할 수 있었을까? 불명예가 뒤따를 수밖에 없는 미결의 옥중생활을 3개월이나 하게 했을까?

그러나 하늘의 섭리는 맞고 빼앗아오는 원칙 아래 발전되기에, 이 사건을 계기로 신자들은 더욱 일치단결하여 발전은 가속화되었고, 통일교회 교세를 세계화할 수 있는 발판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말씀선집 중에서)

"미군이 들어오면서 한국 정부가 무슨 일을 했느냐 하면 신령한 목사들을 앞세우지 않고 신사참배한 사람들, 즉 영어할 줄 알고 외국에 가서 공부하고 왜정 때 일본 앞잡이 노릇하던 그 목사들을 다시 세운 것입니다. 신사참배한 목사들을 다 제거해 버리고 신사참배 하지 않은 목사들을 중심으로 하나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이승만 박사나 박마리아를 중심한 자유당 사람들이 선생님의 말을 안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한국이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때 선생님의 말을 들었다면 한국이 지금 이렇게 안 되었을 것입니다. 중국 공산당도 다 녹아났을 것입니다.

만일에 이승만 박사가 선생님의 말을 들었다면 소련 공산당은 벌써 내 손에 없어졌을 것입니다. 만약 이 사상을 40년 전에 한국이 받아들였더라면 일본은 한국과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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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年09月10日

지금은 양심혁명이 필요한 때! 좌우논쟁은 시대착오적 발상!!

日本語
여러분, 하나님의 창조는 참으로 신비하고 오묘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인간을 당신의 자식으로 창조하시고 만물의 영장으로 세우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양심'0|라는 최고 최선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인간이 지상계에서 일생을 항해하는 데 필요한 나침반으로 하사하신 것이 '양심'이라는 특별 선물입니다. 흔히들 인생 100년을 애기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양심의 작용권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양심은 우리의 모든 언행은 물론 생각까지도 부모보다 먼저 알고, 스승보다 먼저 알고, 하나님보다도 먼저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삶을 지도하고 감시하는 본원적인 기능을 양심에게 전수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수정처럼 맑고 투명해야 할 인간의 양심에 타락성의 때가 끼어 지금까지 각종 죄악과 질병 속에서 본래의 기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탄 주관권의 이 사악한 세계에서 하루라도 빨리 해방·석방을 받고 싶어 부르짖고 있는 앙심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의 힘으로는 양심의 기능을 본연의 위치로 돌릴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하늘과의 종적인 관계가 수직을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65억 인류 모두가 자기 나름대로의 각도를 만들어 그것이 정통이요, 최고의 것인 줄 착각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절대적 기준을 형성하여 측정할 수 있는 최단거리의 수직각도가 나오기 전에는 그 누구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역사상 전무후무한 자리에서 인류를 사탄의 굴레로부터 구해 주고 천국으로 인도해 줄 수 있는 키를 가지고 오신 분이 레버런 문입니다.

결코 본인이 원한다고 해서 찾아지는 자리가 아닙니다. 하늘이 인침을 주어 인류의 구세주, 메시아, 재림주, 참부모로 세워준 자리입니다. 65억 갈래로 갈라져 있는 인류를 90도의 수직각도 길로 다시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참부모, 참스승, 참주인의 길, 즉 양심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진리의 삶을 직접 실천하고 보여 주는 분이 바로 레버런 문이라는 것입니다.

3천억이 넘는 영계의 절대선령 된 인류도 이 사실을 이구동성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위시한 4대 성인은 물론 공산주의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상가와 철학자까지도 이 엄청난 현실 앞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영계에 가 있는 그들까지도 참부모의 축복은사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받을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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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は良心革命が必要なとき!左右論争は時代錯誤的な発想!!

한국어
皆様、神様の創造は、実に神秘で奥深さにあふれています。人間を、御自身の子女として創造され、万物の霊長として立てられた神様は、人間に「良心」という、最高、最善の贈り物を下さいました。

人間が地上界で一生を航海するのに必要な羅針盤として下賜されたものが、「良心」という特別な贈り物です。よく人生百年と言いますが、人間は誰彼を問わず、生まれて死ぬ瞬間まで、良心の作用圏を抜け出すことはできません。

ですから、良心は、私たちのすべての言行はもちろん、考えまでも父母よりも先に知り、師より先に知り、神様よりも先に知るのです。神様が、人間の人生を指導し監視する本源的な機能を、良心に伝授してくださったからです。

ところで、水晶のように清く透明でなければならない人間の良心に、堕落性の垢がつき、今まで様々な罪悪と疾病の中で本来の機能をすべて発揮できずにいるのです。したがって、サタン主管圏のこの邪悪な世界から一日でも早く解放・釈放を受けたいと、泣き叫んでいる良心の声を聞ける皆様にな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しかし、そのような堕落した人間の力では、良心の機能を本然の位置に戻せる道はありません。 天との縦的な関係が垂直を成すことができずにいるからです。六十五億の人類すべてが、自分なりの角度をつくり、それが伝統であり最高のものであると錯覚し生きているのです。絶対的基準を形成して測定できる最短距離の垂直の角度が出てくるまでは、救援を受けられる道を誰も探し出せないということです。

歴史上、いまだかつてなかった位置で、人類をサタンの束縛から救い、天国へと導いてくれる鍵をもって来られる方が、レバレンド・ムーンです。本人が願ったとしても、決して探し出せる位置ではありません。

天が印を与え、人類の救世主、メシヤ、再臨主、真の父母として立てられる位置です。サタンの影響圏外にある絶対解放・釈放の位置です。六十五億に分かれている人類を、九〇度の角度の垂直の道に再び連結させてくれる真の父母、真の師、真の主人の道、すなわち良心を主人として侍って生きる真理の人生を、直接実践して見せてくださる方が、正にレバレンド・ムーンだということです。

三千億を超える絶対善霊になった霊界の人類も、この事実を異口同音に証しています。イエス様をはじめとする四大聖人はもちろん、共産主義者たちを含むすべての思想家や哲学者までも、この驚くべき現実を前に感謝の涙を流しています。霊界に行っている彼らまでも、真の父母の祝福の恩賜を通さなければ、救援を受ける道がないから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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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年09月01日

통일사상이란?

오늘날 세계는 일찍이 없었던 대격변을 경험하고 있다. 세계적화를 표방하며 20세기의 세계를 뒤흔들었던 소련 제국이, 1991년 8월 보수파의 쿠데타를 계기로 '소련의 사멸'이라는 충격적인 사태를 맞이했다.

그리고 소련을 인수한 러시아 공화국 옐친대통령은, 1992년 6월 미국을 방문한 후 상하 양원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서 '공산주의는 사멸했다'고 선언하고, '우리나라에서 공산주의를 다시 부활시킨다는 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에서 해방된 구 소련은 아직껏 가야할 방향을 상실한 채 혼란과 경제적 파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일부 국가는 경제 개혁과 개방을 부르짖으며 동시에 사회주의 제도와 공산당독재를 견지하는 모순을 내포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한편 민주주의 세계의 기수인 미국은 걸프전의 승리의 영광은 잠시였을 뿐, 방대한 적자 경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급속도로 지도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공산주의의 이상은 땅에 떨어지고, 민주주의 세계에서는 강력한 리더가 사라진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는 민족과 종교의 대립에 의한 분쟁, 경제마찰 등이 분출하고 있으며, 이러한 혼란을 틈타 각종 복구주의마저 대두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AIDS가 만연하고 소말리아 등 후진국에서는 빈곤 문제가 더 심화되고 있어 인류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이와 같은 혼란과 불안 속에서 세계는 지금 인류를 이끌 새로운 이념과 지도력을 절실히 갈망하고 있다.

'통일사상'은 '하나님주의' 또는 '두익사상'이라고도 불리운다. 하나님주의란,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을 핵심으로 하는 사상이라는 뜻이며, 두익사상이란 우익도 아니요 좌익도 아니며 '더 높은 차원에서 양자를 포용하는 사상'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한 새로운 가치관에 의한 '애타정신'으로 좌익사상인 공산주의의 증오심, 투쟁심 및 물질주의를 제거하고, 우익사상인 민주주의의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주의를 제거하여 '대립하는 양자를 화해'시키고, 공동으로 하나님과 인류의 숙원인 이상세계의 실현을 향하여 전진할 수 있도록 이끌기 위한 사상이 바로 하나님주의이자 두익사상이며 통일사상인 것이다.

더 나아가 통일사상은 인류의 부모요 모든 종교를 설립한 최고의 중심인 하나님의 '참사랑'으로, 대립하는 민족과 종교를 화해시켜 '인류 한가족' 이념을 실현함과 아울러, 인류의 모든 '난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이상세계를 창건하고자 하는 사상이다.

따라서 어떠한 난문제라 하더라도 통일사상(하나님주의)을 적용한다면 쉽게 또 근본적으로 풀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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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年08月29日

乱世に真の主人あらわる

한국어
「乱世に英雄あらわる」とあるように、 世が乱れれば乱れるほど「本物」が出現する日は近いと言えます。

米・ロシア関係が冷戦時代に逆戻りしたり、北朝鮮は韓国を見下ろしたり、日・韓関も敵対関係に戻ったりする一連の流れは、究極的には「真の主人」がいないが故に、現れる症状とも言えます。

「真の主人」とは、本然の神様に父として侍ることのできる一体となった人間である。したがって、神の祖国創建と韓民族の正統性回復は先ず自分の中の神を祭ることから始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

今天宙は、切なる思いで神の子たち、すなわち「真の主人」の出現を待ち望んでお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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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年08月27日

난세에 참주인 난다

日本語
'난세에 영웅 난다'는 말처럼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진짜'가 출현할 날이 가깝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미·러 관계가 다시 냉전으로 돌아가고 북한이 남한을 깔보고 한·일관계가 원수관계로 돌아가는 일련의 흐름은 궁극적으로 '참주인'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들로 볼 수 있습니다.

'참주인'이란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시고 사는 사람을 말하며, 따라서 하나님의 조국창건과 한민족의 정통성 회복도 먼저 내 안에 하나님을 모시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지금 천주는 하나님의 아들딸 즉 '참주인'이 나타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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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年08月25日

聖人迫害と国家的蕩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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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迫害)崔濟愚(崔水雲)先生は、イエス以降の主流摂理を西洋から東洋に移す第一使命者として、神と人間の一体関係を明らかにした「侍天主」思想を中心とした「東学」を提唱したが、イエスが既得権勢力によって処刑されたように、先生も「惑世誣民」という無実の罪をきせられ、斬首刑に処された。

(蕩減)1895年、韓国の国母・明成皇后が日本の刺客の刀で暗殺され、1905年に乙巳保護条約(日韓保護協約)が締結さ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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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迫害)1908年、甑山教の創始者カン・イルスン(カン・ズンサン)先生は、韓国各地を回りながら来るべき天の摂理に備えるべく「天地工事」を行っていたが、日本の警察は、「義兵を起こそうと企てている」という疑いで先生を逮捕した。先生は吊り下げられた状態で鞭打ちされ、その後遺症によって翌年死亡した。

(蕩減)1910年に日韓併合条約が締結され、1923年にM7.9の関東大震災で105、000人以上が死亡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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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迫害)1944年10月から1945年2月まで4ヶ月間、日本の警察は、統一教会・家庭連合の創設者、文鮮明先生を拷問した。

1944年10月、日本の警察は突然文先生の新婚の家にやって来て連行して行った。共産主義者として引っ張られていった友人の口から、文先生の名前が出たことが理由だった。

警察:「お前も共産党だろう?内地に留学して、そいつと同じ仕事をしただろう?こんなところで犬死にしないように、共産党の奴らの名前を全部吐くことだな!」

先生は、机の脚4本が折れるほど鞭打ちされたが、最後まで口を開かなかった。拷問は、とても言葉で言い表せないほど残酷だった。

警察は、先生の家で発見された日記帳に名前が書かれていた友人たちも共産党ではないか白状しろと迫ったが、先生は死を覚悟して知らないと突っぱねた。

彼らは鋲を打った軍靴で先生の体を容赦なく踏みつけ、死んだようにぐったりすると、精肉店の肉塊と化した先生の体を天井に吊るして揺らした。先生の口から鮮血がほとばしってコンクリートの床を濡らした。

何度も気を失い、そのたびにバケツ一杯の冷水をかけられ、意識が戻ればまた拷問を始めた。鼻をつまんで、洋銀製のやかんを口の中に突っ込み、大量の水を無理やり飲ませる水拷問もあった。床に倒れた後、カエルのように膨れ上がったおなかを軍靴で踏みつけた。

食道を通って上がってきた水を吐き出すと、目の前が真っ暗になって何も見えなかった。そんな拷問を受けた日は、食道が燃えるように痛み、水っぽい汁でさえ一口も喉を通らず、剥き出しの床に力なく俯せになって、ぴくりとも動けなかった。

業を煮やした警察は、最後の手段として先生の母親を呼んで面会させる作戦に出たが、警察の意図を知った先生は「少しだけ我慢すれば、この時代は間もなく終わります。遠からず日本は滅びますから、泣かないでください」と母を慰めた。

(蕩減)1945年8月6日広島、9日長崎原爆投下で129、000〜246、000人以上が死亡し、その後日本は放射能の後遺症に悩まされている。


(迫害)日本政府は、文先生が脱税の罪で米国ダンベリー刑務所に収監され、13ヶ月間服役したことを理由に20年以上日本への「入国」を拒否した。

(蕩減)2011年3月11日に発生したM9.0の東日本大震災により、人命被害2万人以上、財産被害25兆円という史上最悪の被害を被った。

また、最高危険段階「レベル7」を記録した福島第1原発の1-4号機の放射能漏れ事故により、今でも放射性物質は空気中や太平洋に継続的に漏れており、人々が「入居」することができない地域になっ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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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聖人) 핍박과 국가적 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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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語
(핍박) 최제우(최수운) 선생은 예수님 이후 주류섭리가 서양에서 동양으로 옮겨지는 제1대 사명자로서 하나님과 인간의 일체관계를 밝힌 시천주(侍天主) 사상을 중심으로 '동학'을 창시했으나, 예수님이 기득권 세력에게 처형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 또한 '혹세무민'한다는 죄목으로 '큰 칼'로 목을 베이는 참형을 당했다.

(탕감)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 자객들의 '일본도'로 살해당하는 국가적 탕감을 치르게 되었고,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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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박) 1908년 증산교 창시자 강일순(강증산) 선생이 장차 이루어지게 될 섭리도수에 맞춰 전국 각지를 돌며 천지공사(天地公事)를 수행하던 중, '의병을 일으킨다'는 죄목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공중에 매달린 채 '몰매'를 맞아, 이듬해 '골병'으로 돌아가시게 됨.

(탕감) 1910년 한·일합방. 1923년 M7.9의 관동대지진으로 105,000명 이상이 사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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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박) 1944년 10월부터 1945년 2월까지 4개월간 일본 경찰이 통일교회·가정연합 창시자 문선명 선생을 '빨갱이'로 몰아 고문함.
 
1944년 5월 선생의 신혼집에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이 선생을 연행함. 연유는 빨갱이로 몰려 잡혀간 친구의 입에서 선생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일경: "네 놈도 빨갱이 맞지? 쓸데없이 개죽음 당하지 말고 빨갱이놈들 이름 다 불어!"

책상다리 네 개가 부러지는 잔혹한 '몰매' 고문을 당했지만, 선생이 끝까지 입을 열지 않자 고문은 날로 더 잔혹해졌다.

경찰은 흑석동 신혼집을 뒤져 선생의 일기장에 적힌 친구들 이름을 대며 실토하라고 고문했다. 징을 박은 군화발로 온 몸을 사정없이 짓이겨 축 늘어진 몸을 정육점 고기처럼 천장에 매달아 놓고 흔들었다. 선생의 입에서 쏟아진 피가 시멘트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정신을 잃으면 다시 찬 물을 끼얹고 고문을 시작했다. 물고문은 코를 잡고 주전자를 입에 쑤셔넣어 배가 개구리처럼 부풀어오르면 바닥에 쓰러뜨려 놓고 군화발로 사정없이 짓밟았다. 목으로 넘어온 물을 다 토하고 나면 눈앞이 깜깜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온 몸에서 기운이 다 빠져 바닥에 엎드린 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고문을 하다 하다 지친 경찰은 최후 수단으로 선생의 어머니를 불러와 반신불수의 선생과 상봉시켜 모정을 흔드는 간계를 꾸미기도 했다. 경찰의 의도를 알아차린 선생은 "조금만 참으면 이 시대는 곧 끝납니다. 머지 않아 일본은 망하니 울지 마세요"라고 어머니를 위로했다.

(탕감)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 원폭투하로 129,000-246,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이후 일본은 방사선 후유증으로 골병을 앓게 됨.


(핍박) 일본 정부는 문선명 선생이 탈세혐의로 미국 댄버리교도소에 수감되어 13개월 동안 복역한 사실을 이유로 20년 이상 일본 '입국'을 불허함.

(탕감) 2011년 3월11일 발생한 M9.0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2만명 이상의 인명 피해와 250조원에 달하는 역사상 최악의 재산 피해를 입음.

또한 최고위험 단계인 '레벨 7'을 기록한 후쿠시마 제1원전 1-4호기의 방사능 누출 사고로 인해 지금도 방사능 물질이 공기와 태평양으로 지속적으로 누출되고 있어 사람들이 '입주'할 수 없는 지역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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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年08月13日

문선명 선생의 독립운동

문선명 선생이 태어난 1920년은 한민족이 일본에게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고난의 때였으며, 민족 갱생의 열기가 3천만 방방곡곡에 울려퍼지던 시절이었다.

원래 조부(문치국) 때까지는 상당히 부유한 가문이었다. 형제 중 막내 동생(문윤국)은 기독교 목사로서 평생을 항일독립운동에 몸바쳤고, 증조부와 조부는 비밀리에 전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바쳤기에 겨우 가계를 유지하기에 어렵지 않을 정도였다.

경성상공실무학교 재학시절 선생은 친구들과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민족정기를 고취하는 한편, 김구 선생의 배후와 연락을 취하며 지하운동을 전개했다.

만 21세 때, 경성실무학교를 마치고 동경으로 유학의 길을 떠났다. 그때 선생은 "내가 지금은 일본으로 공부를 하러 떠나지만 학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에는 반드시 나라를 찾아세우리라"고 하나님께 결심의 기도를 올렸다.

선생은 동경에서 와세다대 부설 고등학교 전기과에 입학한 뒤로 줄곧 항일운동을 전개하여 고문도 많이 받았고, 요시찰 인물로 감시당하며 긴장의 나날을 보냈다.

수시로 경시청에 불려다녔고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는 입장이었다. 어느날 조선인 유학생들이 일제히 항거의 횃불을 올리기로 모의했는데 선생도 그 주동자의 한 사람이었다.

당시 동아시아의 정세는, 1937년 중국에 대한 일본의 본격적인 침략이 시작되고, 1941년 미국에 대한 일본의 선전포고와 함께 아마게돈 전쟁인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일본은 먼저 한반도에서 한민족의 체취가 남아 있는 모든 문화활동을 금지했고, 한글로 발행되는 신문과 잡지들을 폐간시켰다.

조선어학회의 간부들은 구속되어 생사지경을 헤매일 정도로 악랄한 고문을 당했으며, 학교나 가정에서 일본어와 창씨개명이 강요되었고, 동녘망배 및 신사참배가 종교인들에게까지 강제되었다.

약 70만 명의 조선인 남자들은 일본으로 언행되어 강제노동에 종사하게 되었고, 부지기수의 처녀들이 전선으로 실려가 군인들에게 위안부로 제공되었으며, 마침내 징병제도가 실시되어 젊은이들을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몰았던 것이다.

일본 국내에서도 전쟁의 위기감이 팽배한 가운데, 선생은 반 년을 앞당겨 조기졸업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귀국 후 녹도조라는 전기회사에 다녔는데, 선생은 일본유학 시절에 항일 활동을 했던 것이 끝내 문제가 되어, 1944년 10월 일경의 손에 붙들려 심한 고초를 겪다가 이듬해 2월에야 출옥했다.

1945년 8월 인류 역사상 첫 핵폭탄이 투하되어 일본이 항복하자, 수많은 민족들에게 피눈물을 강요해온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게 되었다.

그 소식을 접한 수많은 사람들이 해방의 기쁨에 싸여 서로 부등켜안고 뒹굴던 그 순간, 남들처렴 만세 한번 신나게 부르지 못하고 홀로 민족의 앞날을 생각하며 하늘을 붙들고 흐느낀 분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청년 문선명 선생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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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일제 치하 40년 고역

[원리강론 p554] 1895년 황궁에 침입하여 왕비를 학살하는 등 잔학무도한 일을 자행하기도 했던 일본의 한국에 대한 제국주의적인 침략의 손길은 을사보호조약에 의하여 뻗쳐졌다.

즉 1905년에 일본의 이등박문과 당시의 한국 학부대신이었던 친일파 이완용 등에 의하여 한국의 외교권 일체를 일제의 외무성에 일임하는 조약이 성립되었다.

그리하여 일본은 한국에 통감을 설치하고 필요한 지역마다 이사관들을 두어 일체의 내정을 간섭함으로써, 사실상 조선의 정치, 외교, 경제 등 주요 부문의 권리를 박탈하였던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을사보호조약이었다.

1910년, 일본이 강제로 조선을 합병한 후로는 한민족의 자유를 완전히 박탈하여 수많은 애국자들을 투옥 학살했고, 1919년 3·1운동 때에는 전국 도처에서 수많은 양민을 살육했다.

더구나 1923년에 일어난 관동대지진 때에는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를 퍼트려 동경에 거주하던 무고한 조선인들을 부지기수로 학살했다.

한편 수다한 한국인들은 일본의 학정을 견디다 못해 기름진 고국산천을 일본인들에게 내주고, 자유를 찾아 황막한 만주벌판으로 이민하여 와신상담의 세월을 보내며 조국광복에 진력하였다.

일본군은 이러한 한민족의 여러 부락을 찾아다니며 노인에서부터 유아에 이르기까지의 전 주민들을 한 건물 안에 감금하고 방화하여 몰살시켰다. 일본은 이 같은 학정을 제국이 멸망하는 날까지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3·1운동에서 혹은 만주벌판에서 쓰러진 민중은 주로 기독교 신도들이었다. 제국 종말기에는 기독교 신도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여 이에 따르지 않는 수많은 신도들을 감옥에 가두어 죽였다.

그 뿐만 아니라 8·15해방 직전 일제의 기독교 탄압정책은 실로 극악무도한 것이었다. 그러나가 일본 천황이 패전을 선언함으로써 한민족은 드디어 그 굴레로부터 해방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한민족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 이후 1945년 해방될 때까지 40년간 제1, 제2이스라엘 선민이 이집트나 로마제국에서 당한 것에 못지 않는 박해를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독립운동은 주로 국내외 기독교 신도들을 중심하고 일어났으며, 박해를 당한 것도 주로 기독교 신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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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年08月10日

偽ニュース伝道師「確証偏向」

한국어
「自己確証偏向」または「自己中心的偏向」とは、自分が信じている既存の信念に準拠した情報のみを受け入れようとしたり、自分の考えに反する情報を拒否する傾向をいう。

研究結果によると、多くの人々は、自分が信じている事実と符合すると明らかな偽のニュースであっても信じようとし、その逆の場合は、いくら正しいニュースであっても頑張って拒否しようとする傾向があることが分かった。

その発生原因は「自己顕示」ねかためである。自分をより優れた存在で包装して表わしたい心理的欲求から始まる。したがって、社会的地位が高いほど自己中心的偏向が強い。家長は、自分の妻よりも合理的に判断すると信じて、校長は教師よりもはるかに広範囲に察しと確信している。

彼らは他人の主張や他のコメントには、非常に慎重に弱点をつかむて批判すると思うのに比較して、自己主張は限りなく寛大で、自分の抜け穴や欠陥を見つけるとき、突然ランタンの下が暗くなる。

このような確証バイアスの捕虜がされていないために、法では、裁判官が先入観や偏見を持たないように、複数のデバイスを置いている。その中検査が有罪と判断して起訴しても確定判決を受けるまでは、被告人が無罪であると推定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無罪推定の原則」が代表的だ。

したがって、普段の情報の相互検証を介して様々な視点を持った情報を取得し、バランス感覚を維持するように努力しなければならない。どのような結果が自分の理論とずれるときむしろ注目して、自分の考えが正しいという確信が強まるほど、彼と矛盾する証拠をより積極的に探して出なければならない。
posted by cigtimes at 16:18| Comment(0) | コラム | 更新情報をチェックす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