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年01月23日

【일본과 기독교의 책임】 통일교인 납치 감금과 고토 겐지 이슬람국 인질의 동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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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겐지 씨를 살해했다고 공개한 영상(20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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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번 '이슬람국가'의 인질이 된 국제저널리스트 고토 겐지(後藤健二, 47)씨는 '일본기독교단' 덴엔쵸후(田園調布)교회 소속 신자이며, '일본기독교단'은 바로 일본 통일교인 납치 감금 및 강제 개종을 주동했던 본거지이다.


지난해 11월 13일 일본 통일교회 고토 토오루(後藤徹)씨는 자신을 12년 5개월간 납치 감금한 마츠나가 야스토모(松永堡智) 목사와 미야무라 타카시(宮村峻)씨 등을 고소하여 결국 승소했다. 그런데 마츠나가 목사는 다름아닌 '일본기독교단'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일본동맹기독교단' 니이츠(新津) 복음그리스도교회 소속이었다.

그러면 왜 '일본기독교단'이 납치 감금 및 강제 개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2차대전 후 미군에 의해 일본의 민주화정책이 실시됨에 따라, 전시 중에 연합교회로 통합되어 있던 '일본기독교단'은 수많는 교파로 나뉘어지기 시작했다. 또한 좌익계 목사와 학생들이 교회에 침투하여 기존의 '교회파'와 대치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1969년 '일본기독교단' 야마테(山手)교회에서 개최된 제16회 임시총회에서는 급기야 믿음으로 의로워짐•삼위일체•성서의 권위를 부정하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정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게다가 좌익들은 '일본기독교단'의 도쿄신학대학마저 장악하여, 이 대학에서 배출된 목사들의 요청에 따라 1988년부터 교단 차원에서 반통일교회 활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던 것이다. 통일교인 납치 감금 피해가 늘어난 시기가 바로 이 때였다.

2002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일본기독교단' 총회의 의장이 된 '교회파'의 야마키타 노부히사(山北宣久) 목사는 2006년도 총회에서 좌익 세력과 '교회파'가 대립했던 지난 40년간을 '광야의 40년'이라 정의한 바 있다.

한편, 동년 5월 통일그룹 이사장으로 취임한 문국진(文國進) 씨는 그로부터 납치 감금에 대한 대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시작했다.

1941년에 성립된 '일본기독교단'은 하늘에 의해 준비된 기반이었으며, 문선명 선생께서 일본 유학 중(41년-43년)에 하숙하셨던 '신주쿠구 니시와세다 잇쵸메'(新宿区西早稲田一丁目)의 바로 옆 '신주쿠구 니시와세다 니쵸메(新宿区西早稲田二丁目)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차대전 후 신앙을 지키기 보다는 보신(保身)주의의 함정에 빠져 최우선적으로 조직을 유지하는데만 급급했던 나머지, 결과적으로 40년간 사탄의 침입을 받고 말았던 것이다.

그 결과 이번에 이슬람국의 인질이 된 고토 겐지 씨 뿐 아니라 2004년 10월 알카에다에 의해 희생된 일본인 청년 고우다 쇼세이(香田証生)군도 동일한 '일본기독교단' 소속 신자로서 섭리적 희생양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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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gtimes at 00:00| Comment(0) | 섭리스페셜 摂理スペシャル | 更新情報をチェック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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