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年02月03日

【인터뷰 시리즈5】평화를 사랑하는 채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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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언제부터 배우가 되었나?

채플린 : 다섯 살 때 말못하는 어머니 대역으로 데뷔하고 나서 열아홉 살에 명문 판토마임극단에 입단했습니다.

김 : 완벽주의자인가?

채플린 : 예를들면 '도시의 불빛(City Lights)'은 눈먼 소녀와의 정신적인 교감을 다룬 영화인데 꽃 파는 여인과 상봉하는 장면을 찍는데만 342번이나 NG를 냈지요. 단 3분을 위해 제작기간 534일 중 368일 동안 반복 촬영했습니다.
Chaplin_City_Lights_still.jpg
김 : 휴머니즘의 극치를 표현한 마지막 장면처럼 인생 속에서 바로 그런 장면들을 만나는 것이 행복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담기 위해서였군요. 그런 평화를 갈구하는 인생관 때문에 히틀러 풍자 영화 '위대한 독재자(The Great Dictator)'에도 반전 메시지를?

채플린 : 곧 파시즘이 등장하리란 예감이 들어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1년전부터 '독재자' 각본을 쓰기 시작해서 개전 후 곧 크랭크인했습니다.

김 : 참 계시적인 영화였던 것같습니다. 독재자 히틀러를 고발하는 영화(1940)가 제작된 뒤 미국이 참전(1941)한 것이나, 유대인 차별의 심각성이 극명하게 묘사되었는데 바로 그 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1940)가 생겼으니 말입니다.

채플린 : 코미디라면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도 공감할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천명"이란 사명감도 있었기 때문에 수차례 암살 위협이 있었지만 죽음도 불사하고 촬영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김 : 주인공 이름 '한나'에서도 타계하신 어머니(한나)를 위해서라도 기필코 완성하겠다는 사생결단의 의지가 엿보입니다. 결과적으로 웃음 속에 반전 메시지를 담는다는 기적과 같은 일을 해내셨군요.

히틀러 : 나도 이 영화를 보면서 배꼽을 잡고 데굴데굴 구르면서 웃었는데 나만 몰래 두세번 보고나서 상영금지시켰다네.

채플린 : 헌데 희한하게도 나와 히틀러는 쌍둥이처럼 닮았지 뭡니까. 동년 동월 출생에다가 검은 머리에 몸집도 작고 콧수염까지... 작품을 마치고 바로 콧수염을 없앴지요.

루즈벨트 : 나도 반전 메시지에 공감해서 백악관이 초대했는데, 평소대로 양말도 안신고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채플린 : 만민평등을 어필하려는 제스처였니다. "나는 세계 시민이다"는 신념으로 미국 국적도 취득하지 않았지요.

김 : 네번이나 방문한 일본에 대한 소감은?

채플린 : 마지막으로 쓴 소리를 했습니다. "일본의 서구화에 실망했다. 고층 빌딩도 좋지만 예술을 잃어서는 안된다. 나는 가부키(歌舞伎), 분라쿠(文楽), 노(能)가 재미있고 덴뿌라(天ぷら)를 먹는 것도 내 중요한 스케줄이다"고.

김 : 1972년 아카데미상 특별상 시상식에서 최장 5분간 기립박수를 받고 "채플린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영화 용어"라고 극찬을 받았는데, "채플린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채플린 : 다음번에 오면 콧수염을 다시 길렀다가 기념으로 드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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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gtimes at 00:00| Comment(0) | 섭리스페셜 摂理スペシャル | 更新情報をチェック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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