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年01月02日

선민의 혈통과 빈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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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선민사상은 하나님께서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고 너희는 내 백성이다"라고 이스라엘만을 선택했다는 언약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이스라엘 민족이 수천년간 디아스포라(난민) 처지에서도 민족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선민사상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선민사상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들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근거가 바로 '이스라엘 혈통'에 있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는 이 혈통에 대한 집착 때문에 이스라엘은 타민족에 대해 늘 배타적이었고, 하나님이 목숨을 걸고 살린 자녀마저도 죄인 취급하며 죄인과 이방인의 구원에 불만을 품고 극렬히 저항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는 속으로 '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이다'고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며 그들의 혈통의식(배타의식)이야말로 돌무더기와 다를 바 없는 하찮은 것이라고 크게 꾸짖었다.

하나님의 말씀(언약의 혈통)이 누구에게 임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서 가장 크게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은 누구였던가? 궁전의 왕도 아니요, 성전의 대제사장도 아니요, 광야의 세례요한이었다.

구약시대의 가장 뛰어난 인물 중 모세와 엘리야는 놀라운 기사와 이적을 행했다. 모세는 10가지 재앙을 내리고 홍해 바다를 갈랐으며, 엘리야는 하늘을 닫아 비가 오지 않게 하고 하늘을 열어 불과 비를 내렸다. 그들도 빈들에서 살았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수십년을 지냈고, 엘리야는 길르앗의 산촌 디셉에서 사명을 받았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명자나 선민이 범하기 쉬운 과오 중 하나는 진리의 말씀을 거울처럼 자신을 비춰보는데 사용하지 않고, 남을 심판하는 법조항처럼 사용하려 든다는 점이다. 교회의 분열과 갈등이 불거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명을 주기 전에 반드시 세속과 단절된 빈들에서 영적으로 훈련을 시킨다. 사람도 없고 문명도 없는 곳에서 금욕생활을 하게 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추앙과 인기에도 교만하지 않고, 늘 겸손하게 자기를 죽이며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는 말씀은 선민의 혈통은 인간의 혈통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한에 속하며, 어떠한 외적인 조건보다도 내적인 기준이 더 중요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천국(선민의 혈통)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지 말라 천국은 네 마음(빈들의 삶) 속에 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던 모세나 세례요한이나 예수님은 예외없이 내적(영적)인 훈련과정을 통과해야만 했다. 따라서 성도들은 달을 가리키는 하나님의 손가락(선민의 혈통)에만 눈이 쏠려 정녕 봐야 할 달(빈들의 삶)을 못 보는 견지망월(見指忘月)의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내적인 가치(빈들의 삶)를 상실한 선민은 더 이상 선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PicsArt_07-06-07.56.26.jpg예수는 유혹 앞에서 '나'를 빼버렸다. 유혹의 씨앗이 자랄 수 없도록 '자아'라는 밭을 아예 쏙 빼버렸다. 그리고 외쳤다. "하느님, 그분만을 섬겨라." 그러자 ‘악마’가 물러갔다.(마태복음 4장11절) 이렇게 악마를 세 차례나 무너뜨렸다. 악마는 '내 안의 욕망'이다. 그게 '빈 곳'을 가리기 때문이다. 그걸 무너뜨려야 '빈 곳'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없이 계신 하느님'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posted by cigtimes at 05:51| Comment(0) | 섭리스페셜 摂理スペシャル | 更新情報をチェック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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