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年01月28日

약 40일간의 평창올림픽•패럴림픽은 완성형 '제3회 총심정 동족권 평화통일대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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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남북의 극한대치 상황 속에서, 일제식민통치와 2차대전의 산물로 약 80만에 달하는 동포들이 일본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 중 절반에 달하는 조총련계 동포들은 대부분 남한 출신이었지만, 북한을 지상천국으로 생각하고 남한을 생지옥으로 선전하면서 극렬한 반한운동을 전개하여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서 1972년 문선명 총재는 승공운동을 일본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국제승공연합 재일본부를 결성했다. 그리고 조총련의 거점인 조선대학 등에서 승공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여 조총련으로 하여금 남북의 현실을 바로 알게 함으로써 민단과 조총련 사이에 화해의 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그와 더불어 조총련의 모국방문을 추진하여 마침내 1974년부터 네차례에 걸쳐 625명의 조총련 재일동포 모국방문이 성사됐다. 광복 후 처음으로 고국을 방문한 이들의 가족상봉으로 부산항과 김포공항은 울음바다가 되었고, 국제승공연합 최용석 이사장은 조총련 모국방문의 공로자로 이듬해 5·16민족상 안보부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남북관계가 극도로 경색된 가운데 성사된 조총련의 모국방문이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자, 문선명 총재는 한국 정부에 조총련 추석성묘단 모국방문을 주선했다. 정부 차원의 모국방문 사업은 7·4남북공동성명의 합의 정신에 따라 1975년에 처음 시작돼 불과 6개월 사이에 무려 7,000여 명을 넘어섰다. 당시 정부가 모국방문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1971년 8월 이후 1천만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북적십자회담이 개최되었으나, 북한이 전제조건으로 반공법·국가보안법 철폐, 반공정책 중지, 반공단체 해산 등을 요구했기 때문에 진전되지 못하고 결국 1973년 회담이 중단됐다.

이에 정부는 한국의 국내법이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주의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안 된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증명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럼으로써 남북이산가족찾기운동을 보다 수월하게 전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다.

둘째, 1960년대 이후 성공적인 경제건설과 새마을운동 등으로 공산주의자들의 조국방문을 받아들여도 된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선의의 경쟁' '인도주의 문제의 해결' 구상을 밝힌 8·15선언(1970년), 대공산권 문호개방을 천명한 6·23선언(1973년), 대공산권 우편물교환업무 개시(1974년)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셋째, 조총련의 허위선전이 조국의 발전상을 잘 모르는 데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하고 조국의 현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법을 어긴 간첩이라도 인도적 차원에서 모국 방문을 허용하기 위해 국가보안법 적용을 정지시키는 특별명령을 발표했다. 한마디로 조총련 추석성묘단 사업은 조총련들에게 충격과 경악이었다. 5만여 명의 조총련들은 모국방문 후 자신들이 조총련 본부와 북한의 선전에 속은 사실을 깨닫고 북한 국적을 포기하고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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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심정 동족권 평화통일대회
근래 가장 주목할 만한 재일동포 모국방문 행사로는 2004년 문선명 총재가 서울에서 주관한 '총심정 동족권 평화통일대회'를 꼽을 수 있습니다. 반세기 넘게 적대 관계로 살아왔던 민단과 조총련이 극적으로 조국 땅에서 형제의 이름으로 다시 만난 것이다. 민단 대표 600여명, 조총련 대표 600여명, 영·호남 대표 1000여명 등 2200여명이 참가했다.

2005년 7월 서울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에서 '제2회 총심정 동족권 평화통일대회'가 열려 민단과 총련에서 각 1100명씩 2200여명, 영·호남에서 지도급 인사가 각 1100명씩 4400여명이 참석했다. 12월에는 민단과 조총련에서 1만여명이 임진각에서 열린 '조국통일 평화대행진'에 참가해 '민단·조총련 단일기'를 흔들며 행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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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총심정 동족권 평화통일대회
이 대회에 참석한 민단 우박일 사무국장은 "문선명 선생의 신념과 비전을 접하고, 재일동포를 묶어 줄 새로운 구심점을 발견했다"며 "민단이건, 조총련이건 갈수록 일본에 동화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어 더 이상 시기를 놓치기 전에 두 단체의 연대가 시급하다. 민단과 조총련의 통합은 한반도 통일에 엄청난 자극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1975년 '재일동포 성묘단 모국방문'이 추진되던 때의 감격과 회한을 털어놓았다. "그때 조총련 동포들이 한국의 발전상을 보고 어찌나 감격해 하던지, 민단과 조총련이 한덩어리가 되는 줄 알았지요. 그러나 조총련 동포들이 모국 방문 후 민단으로 전향했지만, 통일 의지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을 금치 못했습니다"며 재일동포 사회를 하나로 묶어줄 지속적인 프로그램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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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칠복 고문(왼쪽 첫번째), 한옥수 고문(오른쪽 두번째)
민단 황칠복 고문은 "남과 북, 좌와 우를 하나되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면 우리들이 왜 60여년간 갈등하고, 증오하고, 아파했겠느냐"고 반문하고, "문선명 총재의 참사랑에 의한 평화통일 사상은 화합과 통일로 가는 지상 최고의 가르침"이라고 역설했다.

조총련 대표로 나온 한옥수 고문은 "문선명 총재가 김일성 주석과 포옹하는 사진을 보고 강한 충격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며 "남북 간 모든 문제 해결은 문 총재가 말씀하고 실천한 참사랑의 사상밖에 없음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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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명 총재
문선명 선생 말씀
"일본이 아시아로 나아가는 데는 한국과 하나되어 나아가야 더 많은 친구, 더 많은 기반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가깝고도 먼 나라가 이제는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가 되어 아시아의 미래를 함께 짊어지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일본은 무엇보다 한국의 통일에 큰 힘을 기울여야 할 줄 믿습니다. 과거 일본의 한반도 지배가 결국 분단으로 끝나버린 데서 오는 뼈아픈 상처가 여러분의 이러한 통일을 위한 성심어린 노력으로 말끔히 씻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선 두 개의 한국인 기구인 민단과 조총련부터 하나되게 하여 통일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이 두 기구는 참사랑을 중심한 두익사상으로 하나될 수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경쟁하고 다투면 가진 것을 모두 잃게 됩니다.

조총련과 민단을 하나로 만들지 않으면 해와 국가 일본이 설 수 없습니다. 민단과 조총련이 하나됨으로써 남한과 북한이 자동적으로 하나됩니다."

결론

1. 평창올림픽•패럴림픽(2/9〜3/18)은 완성형 '제3회 총심정 동족권 평화통일대회'다. 문선명 총재의 천주적인 승리권을 상소받는 판가리 섭리다.

2. 우리는 어머니 나라의 내적인 대표이며, 아베 총리는 외적인 대표로서 민단과 조총련을 재창조하는 완성적 섭리다.

3. 금후 민단과 조총련을 이끌고 남북통일시대를 견인하는 중심인물을 결정하는 섭리이다. 제2의 문선명 총재, 박정희 대통령 같은 인물이 출현한다.

4. 금후 조총련 1만명을 교육해야 한다. 그들이 선두에 서서 북한을 해방하고 세계복귀섭리를 이끌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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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gtimes at 15:48| Comment(0) | 섭리스페셜 摂理スペシャル | 更新情報をチェック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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