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年01月04日

【애국지사 금산 문윤국 선생】"남북 사이에 평화가 올 날이 이제 멀지 않았으니... 너무 근심 말아라"

금산(錦山) 문윤국(文潤國, 1877.1.30〜1958.1.2) 선생은 1877년 1월 30일 평안북도 정주군 덕언면 상사리에서 문정흘 선생의 3남으로 출생하였다.

1907년 이승훈 선생을 배후에서 도와 오산학교를 설립했으며, 1909년부터 1913년까지 신안소학교 교사를 역임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1910년 기독교 입교, 1913년 평양장로교 신학교 입학, 1919년 음력 1월 선천 남교회에서 개최된 경북노회에 참가, 조선독립운동 발기인으로 서명하였으며, 파리 강화회의에 제출하는 독립청원서에 전국 13도 대표로 서명하였다.

3.1운동 독립선언서에 33인의 대표로 동참하려 하였으나 선생이 목사로 담임하고 있었던 덕흥교회의 이명룡(조선일보 사주 방응모의 사돈), 김병조 두 장로가 대신 참석해 서명하게 되었다. 동년 3월 아이포면(1939년 덕언면으로 병합) 사무소 뒷산에서 수 천여명의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을 선언하였다. 이어 이승훈 장로와 오산학교를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앞장서서 결행하다가 체포되어 2년 형을 언도 받고 복역 중 특사로 출감하였다.

1921년부터 지하운동을 전개하고, 만주에 거주하는 김숙제 목사를 통해 독립군 자금 7만 8천원(당시 쌀 한 가마가 7원으로 상정할 때 현재 시가는 약 17억원)을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당시 고향에서는 '목사가 패가망신해 고향에 도저히 있을 수 없으니까 도망가 버렸다'는 소문이 퍼졌으나, 후일 유서를 통해 집안의 재산이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되었음이 밝혀졌다.

선생은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어 불가불 충북 괴산으로 거처를 옮겨 3년을 지낸 후, 강원도 정선으로 이주해 청년들에게 한학을 가르쳤다. 1948년 이승만 박사로부터 정선 군수를 통해 세 차례나 정치에 참여할 것을 권유받았으나 후학들을 가르치는데만 전념하였다. '벼슬하지 말라'는 선대의 유훈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던 중 1958년 1월 2일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북평5리 노루목에서 조국의 평화통일을 기원하며 별세하였다.

문선명 선생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p.29-34)

윤국 할아버지는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목사로 영어와 한학에 능한 인텔리였습니다. (정주군) 덕언면의 덕흥교회를 비롯해서 세 군데 교회의 담임목사를 지낸 윤국 할아버지는 최남선 선생 등과 덕흥교회 사람이 셋이나 되자 민족대표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셨습니다. 그러자 오산학교 설립에 뜻을 같이 했던 남강 이승훈 선생은 윤국 할아버지의 두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만약의 경우 거사에 실패하면 후사를 맡아달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3월 8일 정주군 오산학교 교장과 교원, 학생 2천여명, 각 교회 신도 3천여명, 주민 4천여명과 함께 아이포면 사무소 뒷산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셨습니다. 일경에게 고문을 당한 할아버지의 몸에는 죽창으로 찔려 움푹 팬 큰 흉터가 있었습니다. 독립운동만 안 하면 군수 자리라도 주겠다는 회유도 받으셨습니다. 그러자 오히려 "내가 너희 도둑놈들 밑에서 벼슬할 줄 알았느냐" 하며 서슬 퍼렇게 호통을 치셨다고 합니다.

윤국 할아버지가 잠시 우리 집에 머물러 계신 것을 알고 독립군들이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죽어도 나라를 위해 죽으면 복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암흑이지만. 반듯이 광명한 아침이 온다"라는 이야기도 하셨습니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늘 몸이 불편하셨지만, 목소리만은 쩌렁쩌렁 하셨지요. "저렇게 훌륭한 할아버지가 왜 감옥에 가야 하나? 일본보다 우리가 더 힘이 세면 그런 일이 없을텐데... 하며 안타까워하던 심정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일경의 괴롭힘을 피해 객지를 떠돌다 연락이 끊어졌던 윤국 할아버지의 소식을 다시 듣게 된 것은 1966년 서울에서였습니다. 사촌동생의 꿈에 나타나 "내가 강원도 정선 땅에 묻혀있노라"라고 하셨답니다. 꿈속에서 받은 주소를 찾아가보니 할아버지는 이미 9년 전에 작고하시고, 그 자리엔 잡초가 무성한 무덤만 덩그러니 남아있었습니다. 윤국 할아버지의 시신을 거두어 경기도 파주로 이장해 모셨습니다.

첩첩산골인 정선에서 붓을 팔아 연명하시다가 서당을 세우고 한문을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윤국 할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웠던 제자들 말에 의하면 평소에 즉흥적으로 한시를 즐겨 쓰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쓰신 시를 제자들이 모아놓은 것이 130여 수나 되었습니다. 
   
〜남북평화(南北平和)〜

십년 전에 북쪽 고향을 떠나 월남했노라
유수 같은 세월이 나의 흰 머리를 재촉하네
북쪽 고향으로 돌아가려 해도 어찌 갈 수 있으랴
타향에 잠시 머물고자 한 것이 오래 머물게 되었노라
고향 갈포 홑옷을 길게 입으니 여름 된 줄 알겠고          
비단 부채 흔들면서 이내 가을 닥칠 일을 걱정하네
남북 사이에 평화가 올 날이 이제 멀지 않았으니
처마 밑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아 너무 근심 말아라

 윤국 할아버지의 마음은 나라 걱정에 매여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또 '애당초 뜻을 세움에 스스로 높은 것을 기약하고, 사욕일랑 터럭끝만치도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는 시구도 남기셨습니다. 나는 윤국 할아버지가 직접 가사를 붙여 지으신 '대한지리가'를 우리 식구들한테 모두 가르쳐 주었습니다.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한 곡조로 부르고 나면 속이 다 후련해지는 맛에 요즘도 우리 식구들하고 즐겨 부르곤 합니다.
    
〜대한지리가〜

동반구에 돌출한 대한 반도는
동양 3국 요지에 자리를 잡고
북으로는 광활한 만주 평야요
동으로는 깊고 푸른 동해로다
남으로는 다도해 대한 바다요
서로는 깊고 누런 황해로다
3면 바다 수중의 쌓인 해산물
어류 조개 수만 종 우리 보배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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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gtimes at 12:10| Comment(0) | 섭리스페셜 摂理スペシャル | 更新情報をチェック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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