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年09月17日

【북일국교정상화】가네마루 신 전 자민당 부총재와 문선명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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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우호 야마나시현 대표단, 평양(9/14)
日本語
고 가네마루 신(金丸信) 전 자민당 부총재의 차남인 가네마루 신고(金丸信吾) 씨가 이끄는 '북일우호 야마나시현 대표단' 60여명(조총련 포함)이 14일부터 4박 5일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 중인 가운데, 16일 아베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나 자신이 조건을 달지 않고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마주 보겠다. 다양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결단력 있게 행동해 가겠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오는 28일부터 내달 3일까지 북한에 대표단을 보내 의료 현장 시찰과 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어 회담 재개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90년대 초 북일수교 교섭을 주도했던 가네마루 전 부총재는 90년 9월 다나베 사회당 대표 등과 함께 북한을 방문하여 김용순 북한 노동당 대표와 더불어 3당 공동선언을 채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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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가네마루 부총재, 김일성 주석, 다나베 대표

공동선언은 '36년간 조선인민에게 끼친 불행과 재난 그리고 전후 45년간 입힌 손실에 대한 사죄 및 배상' '조기 국교정상화' '양국 직항로 개설' '재일조선인 법적지위 보장' '여행대상국 중 북한 제외 항목 삭제' '조선은 하나이며 남북대화를 통한 평화통일은 조선인민의 민족적 이익에 부합됨을 인정' '평화롭고 자유로운 아시아 건설과 핵 위협 제거' 등 8개 항목.

이듬해 2월 가네마루 씨는 둘째아들 '신고'를 세 번째로 평양에 파견해 '북일수교를 앞당기는 첩경은 핵사찰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김일성 주석에게 전달했다.

당시는 북한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론이 대두되고 있던 때였다. 그러던 중 동년 12월 통일교회 문선명 선생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과 단독회담을 갖고 '핵에너지는 평화적 목적에만 사용되어야 하며, 북한은 순리적인 국제핵사찰을 받을 것' 등 4개항의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것을 계기로 가네마루 씨는 92년 3월 문선명 선생을 일본에 초청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3월 20일 가네마루 씨가 도치기현 아시카가시에서 연설하던 중 우익으로부터 총격을 받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가네마루 신 씨 저격사건

객석 넷째 열에 앉아 있던 남성이 달려나가며 약 5미터 지근 거리에서 권총 세 발을 발사했다. 그는 도쿄의 우익단체 소속이었다. 가네마루 씨는 다행히 부상을 입지 않았으나 한 발은 연단에 명중돼 2장의 두꺼운 판넬을 뚫고 연단 옆에 떨어져 있었다.

총리와 각료, 당 3역이 연설 중에 저격당한 사건은 전후 처음 발생한 일이었기 때문에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가네마루 씨는 북한과 공동선언 체결 이후 '굴욕 외교'라는 비판을 받으며 자택에 화염병이 투척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 날은 삼엄한 경비 속에 약 50명의 경찰관이 배치돼 있었다.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중에서(1992/4/3)

"가네마루는 나하고 만날 약속을 하고 나를 초청한 사람입니다. 만날 약속을 한 날로부터 1주일 후에 총격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5미터 거리에서 세 발 쏜 총알이 몸에는 하나도 스치지 않고 어디로 다 가버렸어요. 그 사람이 죽었으면 내가 일본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사!

일본 국회의원들은 그 사실을 알고 '정말 그렇구만. 문 총재가 어떤 양반이기에 문 총재를 만나지 못할까봐 죽을 가네마루를 살려주었단 말이냐'라고 하더라구요. 가네마루를 살려 준 것이 가네마루를 사랑해서 살려 준 것이 아니라, 문 총재를 만나지 않으면 일본과 아시아에 사고가 터져 좋지 않겠으니 문 총재 때문에 살려준 것입니다."

문선명 선생은 미국에서 탈세 혐의로 1년 이상의 실형 판결을 받은 전력 때문에, 그때까지 일본의 '출입국관리 및 난민인정법'에 따라 일본에 입국할 수 없었다. 그런데 '동북아의 평화를 생각하는 모임'이라는 국회의원 집회에 참석한다는 명분 아래 특별조치로 14년 만에 입국허가가 내려졌던 것이다.

그 배후에는 가네마루 씨의 법무부에 대한 정치적 압력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가네마루 씨는 '정계의 오야붕'이라고 불릴만큼 자민당 최고의 실력자였다. 1972년 총재 선거에서 다나카 가쿠에이를 밀어 '중일국교정상화'를 성사시켰고, 이후 30조원 이상의 중국에 대한 ODA 개발원조가 실시되었다. 1982년 총재 선거에서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 쓰고 나카소네 야스히로를 밀어 당선시키기도 했다.

이윽고 3월 31일 문선명 선생과 가네마루, 나카소네의 회담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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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가인 아벨과 같은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지성세계를 대표하는 나카소네이고 한 사람은 가네마루입니다. 이번에 가서 이 두 사람을, 가인 아벨을 하나 만들어야 됩니다.

문 총재가 이북 갔다 온 사진첩을 보여 주니까 가네마루가 하는 말이 '하루하루 생사지경을 헤매면서 가족을 만나기를 바라는 1천만 이산가족을 생각하며 가슴아파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볼 때 눈물이 쓱 돌더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 양반이 하는 말이, '내가 1천만 남북 이산가족을 하나 만드는 데 있어서 문 총재와 함께 하나되어 하겠습니다'라고 결의를 표명했습니다.

지금까지 일본은 서구사회에 투자해왔습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돈 벌어 가지고 서구사회에 투자했지만, 그들이 법 조항 하나만 바꾸면 다 빼앗긴다. 그 돈이 먼저 아시아로 안 가면 일본은 망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직접 중국에 투자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의 경제를 먼저 부흥시킨 다음 아시아로 진출하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인데도 불구하고, 일본은 그것도 모르고 자기들끼리 다 해먹겠다고 야단치고 있는 것입니다. 해 보라는 거예요, 나라 꼴이 어떻게 되나" 하고 질책했습니다.

이 때 문 선생은 북한에 1조원을 지원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문 선생이 일본 입국이 불가능한 기피 인물이라는 것과 북한에 대한 보상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일본의 우익세력, 북일수교에 대한 한국 정부의 부정적 태도, 북한의 핵개발 의혹,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본에 대한 미국의 압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일본 정부차원의 북일수교 교섭은 1992년 5월까지 8차례 실시됐으나 아무런 성과 없이 중단되었다. 더우기 북한의 미사일 실험과 간첩선의 일본 영해 침범 등으로 북미 관계는 전쟁 일보 직전까지 치달았다. 또한 가네마루씨는 5억엔의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발각돼 부총재직을 사임하고, 이듬해 3월 탈세 혐의로 체포되었다.

가네마루 씨가 실각하자 나카소네 씨는 북한과 일본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문 선생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문 선생은 일본에 입국하지 못했으며 (2010년 미국 정부를 움직여 일본 정부에 압력을 가하자는 시도가 있었으나 일본 통일교회가 응하지 않아 실현되지 못함), 19년째였던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M9.0의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일본은 인명 피해 2만 명 이상, 재산 피해 최대 1000조원(방사능 처리 비용 포함)이라는 사상 최악의 피해를 입었다. (문 선생이 가네마루 씨에게 제안한 지원금의 1000배에 해당함.)

게다가 최고위험 수준인 '레벨7'을 기록한 후쿠시마 제1원전 1〜4 호기의 방사능 누출 사고로 인해 지금도 끊임없이 방사성 물질이 공기와 태평양 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어 사람들이 '입주'할 수 없는 지역이 되고 말았다.

posted by cigtimes at 19:06| Comment(0) | 섭리스페셜 摂理スペシャル | 更新情報をチェック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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