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年09月19日

문윤국 선생과 조선일보의 인연

"이북에서 내려온 것이 조선일보예요. 1천만 기독교인들이 내려왔는데, 거기에서 왕초의 자리에 있던 것이 문윤국 할아버지였어요. 문윤국 할아버지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됐는데, 정주군 덕흥교회 목사였어요.

이 덕흥교회에 조선일보 사주의 사돈이 다녔어요. 조선일보 사주 방응모는 광산으로 일확천금을 벌어 신문사를 세운 겁니다. 그 사돈이 덕흥교회 장로 이명룡 씨예요. 군에서 제일 부자였고 3.1운동의 33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들어간 거예요." (말씀선집 606권 121-122)

본래는 이승훈 선생을 도와 정주 오산학교를 세우신 문윤국 선생(문선명 선생의 종조부)께서 3.1운동 독립선언서에 33인 대표로 동참하려 했다가, 덕흥교회의 이명룡 김병조 두 장로를 보내 대신 서명하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조선일보는 문윤국 선생에게 신세를 진 입장이기도 합니다. 당시 금광왕이었던 방응모 씨를 조선일보 사주로 영입한 사람은 다름아닌 오산학교 교장을 지내신 조만식 선생이었고, 조만식 선생께서도 6개월 동안 조선일보 사장으로 있었습니다.

만일 해방 후 조선일보와 문선명 선생께서 하나되었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posted by cigtimes at 08:11| Comment(0) | 칼럼 コラム | 更新情報をチェック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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