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年10月17日

【제주도·거제도 영계해방】전쟁의 아픔을 딛고 '평화·통일의 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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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정중앙에 위치한 제주도

제주도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의 중앙에 위치한 지리적 특수성으로 인해 예로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주목을 받았던 곳이다. 이로 인해 일제 말기에 군사기지화되어 큰 위기를 맞았고, 4·3사건의 참혹한 피해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같은 운명은 과거의 역사에 그치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나라들 틈바구니에 끼어 동북아시아의 '화약고'가 될 수도 있고, 강대국들 간의 완충지대로서 균형을 잡아주는 '평화의 섬'이 될 수도 있다.

금번 '제주도 영계해방'은 그동안 전쟁과 좌우의 이념 싸움으로 희생된 영인들을 해방함으로써 금후 제주도가 좌우 화합과 한일 일체, 환태평양 시대를 개막하는 '평화의 섬'으로 거듭가기를 염원하는 뜻에서 진행되었다.

일본군 사령부가 제주도에 비상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44년 필리핀이 미군에 의해 함락되면서부터이다. 일본군은 미군의 공격에 대비해 제주도 전역을 요새화하여 제주도에 6만-7만여 명에 달하는 병력을 배치했다. 일본군은 어뢰정 기지를 만들기 위해 해안 절벽에 굴을 팠다. 미군 함정이 다가올 경우 1인용 어뢰정을 타고 미군 함정으로 돌진해 배를 폭파시키는 '바다의 가미카제 특공대' 기지였다.

삼매봉·송악산·성산 일출봉·수월봉·서우봉 등 아름다운 해안 절벽마다 줄지어 뚫려 있는 굴이 바로 어뢰정 기지이다. 또한 어승생·절물·발이매·산천단·녹산장·송악산 등 중산간 지대의 오름에는 굴을 파서 지하요새를 강화했다. 비행장으로는 알뜨르비행장, 정뜨르비행장, 진드르 간이비행장이 설치·확장되었고 활주로를 비롯하여 방어시설·격납고·정비고 등이 만들어졌다. 이같은 제주도의 요새화 전략으로 인해 제주도 주민들이 당한 고초는 조선 전체에서도 가장 심했다.

알뜨르 비행장

'알뜨르 비행장'은 제주도에 건설된 일본의 비행장으로서 1926년 제주 주민들이 동원되어 10여년 동안 20만평 규모로 지어졌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40만평 규모로 확장되어 중국본토 폭격을 겨냥한 전초기지로 쓰였으며, 1942년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80만평으로 확장돼 가미가제 특공대가 이곳에서 훈련을 받았다. 현재 20개의 격납고가 원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황우지해안 열두굴

서귀포시 황우지해안의 '열두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미군의 공격을 대비해 어뢰정을 숨기기 위해 만들어 놓은 12개의 군사방어용 인공굴이다. 주변 해안경관도 대단히 뛰어나 역사적 보존 가치가 매우 높은 자원이다.


송악산 진지동굴

송악산 주변도 일제가 중국 공격을 위한 전진기지와 본토 사수를 위한 '옥쇄(후퇴 없이 끝까지 사수하다 죽음)' 지역으로 삼았던 곳으로 해안절경의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아픈 상처가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일본군은 송악산 일대에 견고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송악산-사계리-화순항-월라봉에 이르는 해안가에 연합군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해안특공기지를 만들어 포대 및 토치카, 벙커 등을 설치했다.


성산 일출봉 동굴진지

성산일출봉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중요한 화산지질학적 가치를 지닌 곳이지만,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의 자폭 특공기지였다는 역사적 아픔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진지동굴 길이는 총 514m에 이르며 왕(王)자형 1군데와 일(一)자형 17군데 등 총 18군데이다. 제주도에 남겨진 일본군 해상특공기지 5군데 가운데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이 동굴진지는 인간어뢰 카이텐(回天)과 자폭보트 신요(震洋)의 특공기지로 구축되었는데, 전남 지방 광산노동자 800여명을 동원해 불과 6개월만에 만들었다고 한다.


가마오름 동굴진지

'가마오름'은 알뜨르비행장과 해안가 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공격과 방어에 유리하기 때문에 미군의 제주도 상륙에 대비한 최전방 방어기지로 요새가 구축되었다. 땅굴 요새는 17군데 총 길이 2㎞ 규모이며 제주도에 구축된 진지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다. 출입구는 33곳에 이른다. 다른 곳과 달리 미로형 3층 구조로 되어 있고 숙소와 회의실, 의무실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제주4.3평화공원

제주 4.3사건은 1948년 4월 3일 재조선미육군사령부 군정청 지배하에 있던 남조선의 제주도에서 일어난 주민 봉기(남조선만의 단독 선거·단독 정부수립 반대)에 대하여 남조선의 국방경비대, 한국군, 한국 경찰, 이승만 지지자 등이 1954년 9월 21일까지 일으킨 일련의 도민학살사건이다. 남조선 당국은 이 사건을 남조선 노동당이 주도한 것으로 규정하고 정부군과 경찰을 동원하여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함으로써 도민 5명 중 1명에 해당하는 6만명이 학살되었고(1949년 제주지사 미정보국 전달) 제주도 마을의 70%가 불탔다고 한다.


영축사(靈鷲寺)

제주 4·3사건으로 인해 그 해 10월 '해안선에서 5km 이상 지점과 산악지대의 무허가 통행금지를 포고하고 위반하는 자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총살한다'는 포고문이 발표되었다. 불교는 당시 제주도의 현안에 깊숙이 참여했기 때문에 그 피해도 컸다. 승려들의 인명 피해는 물론이고 사찰들도 수난을 당했다. 위풍당당했던 부악사도 토벌대에 의해 전소되었다. 영축사는 부악사의 뜻을 이어 새로운 부지에 자리잡은 사찰로서 제주 4.3사건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고 있다.


거제포로수용소

거제포로수용소는 1951년 6월까지 북한 인민군 포로 15만과 중공군 포로 2만명 등 최대 17만 3천명의 포로를 수용했다. 그 중에는 여성 포로도 300명이 있었다. 본국으로 송환을 거부하는 반공 포로와 송환을 원하는 친공포로 간에 유혈사태가 자주 발생하였고(약 1200여명 암매장), 수용소 소장이었던 도드 준장이 포로들에게 납치되었다가 석방되는 등 냉전시대 이념갈등의 축소판과 같은 양상을 띠고 있었다. 이후 조사를 거쳐 반공포로들은 거제도 밖의 수용소에 배치되고 거제도에는 대부분 공산포로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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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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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gtimes at 11:17| Comment(0) | 섭리스페셜 摂理スペシャル | 更新情報をチェック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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