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年09月26日

【동시성 섭리인가】천일국(조국) 창건 '3대시험'과 조국 일가 '검찰수사'

日本語
"하늘나라의 헌법 1조가 뭐냐 하면….혈통을 더럽히지 말라! 순결한 혈통을 영원히 지키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인권을 유린하지 말라! 셋째는 공금을 약취하지 말라!" -말씀선집 349권-

복귀섭리노정에서는 언제나 '참'이 나타나기 전에 '거짓'이 먼저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먼저 적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하신 말씀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렇게 볼 때,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리라(암 3:7)"고 하신 말씀처럼, 조국-정경심 일가에 대한 검찰수사는 불원간 닥칠 아벨형 섭리를 미리 보여주는 예시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의 '3대시험'을 통과하신 것처럼, 천일국(조국) 창건의 주인은 반드시 '하늘나라 헌법 1조'에서 명시한 '3대철칙(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검찰수사보다 더 엄격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영계를 통해 샅샅히 들여다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3대철칙(시험)〜

"첫째는 순결한 혈통을 유린하는 죄입니다. 죽는 일이 있더라도 하늘로부터 전수받은 순결한 혈통을 더럽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인사조치를 잘못해서 인권을 유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평등합니다. 인권을 차별하거나 유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책임자들은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함부로 인사조치를 해서는 안 됩니다. 나라를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인권을 정상적으로 지도하는 데는 참사랑, 즉 위하는 사랑을 갖고 사는 사람이 주류입니다. 사랑하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그런 사람들을 중심삼고 세계가 수습돼 나가야 됩니다. 천지창조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주류사상을 흩어 버리는 것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죄 중에 둘째 번 죄입니다.

셋째로 공금을 도둑질하지 말라, 공금을 마음대로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상 세 가지입니다. 이 모두가 타락한 아담 개인과 가정에서부터 유래된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감옥 가는 사람이 70퍼센트 이상 됩니다. 감옥에 들어가 보면 그렇습니다. 인권을 유린하고 핏줄을 더럽히고 남녀문제에 걸려 있습니다. 그 다음엔 돈 문제, 권력 문제입니다. 돈과 지식과 권력이 원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주의란】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장성기 완성급' 영적 시험 극복하는 길 → 확고한 '원리관' 확립해야

【혈통신학】자체자각과 타락성근성

【사탄 극복】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창조주 하나님을 닮아】성인은 스스로 완성한다

【남3.26)

【양자택일】노예로 남을 것인가 왕이 될 것인가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곁에 두어라

【실력과 실적을 보여주자】등에 업혀 살 수만은 없다

【하심(下心)】낮은 곳에 머무는 '하나님의 심정(하심)

참모의 시대, 팀웍으로 비약한다

'중보자'로서의 신종족메시아

남북통일을 위한 초종교 파트너십과 영적 진화

【모심의 생활】좋은 것을 챙길 것인가 양보할 것인가

고난의 상속자•대신자가 되게 하소서

'탕감조건' 살아서 세울 것인가, 죽어서 세울 것인가

신종족메시아와 대속

이상상대와 참부모

신종족메시아와 자기 책임시대

축도의 의미

【붉은 원숭이의 해】천사장권 혹성 탈출

참어머님과 형진님의 7년 로정

선민의 혈통과 빈들의 삶

상대자가 자기보다 더 낫기를 바라는 사랑세계의 공식

【맞고 빼앗기 작전】극에 달하면 반전된다

【참평화의 길 Ⅴ】생명의 파수꾼

【현진님께 드리는 글】GPF '노블레스 오블리주' 앞장서야

【천일국 통일용사】'목계' 싸우지 않고 이긴다>

【摂理的同時性なのか】天一国(祖国)創建「3大試練」&曹国一家「検察捜査」

한국어
「天の王国の憲法第一条は、血統を汚さないことである。2つめの項目は、人権を蹂躙しないことであり、そして3つめの項目は、公金を盗まない、公的資産を自分のために使用しないことである。」 - 御言選集349巻 -

復帰摂理の路程においては、常に、「真なるもの」が来る前に、「偽もの」が先に現れるようになっています。キリストが来られる前に偽キリストが来るでろうと言われたのも、まさにそのためです。

従って、アモス3章7節に「 まことに主なる神は、そのしもべである預言者にその隠れた事を示さないでは、何事をもなされない 」 と言われたように、チョグク(曹国)- チョン・ギョンシム一家に対する検察捜査は、遠からず訪れるアベル型摂理をあらかじめ予告しているかもしれません。

イエス様がサタンが試した「3大試験」に勝利したように、天一国(祖国)創建の主人は、必ず「天一国憲法1条」が明示した「3大鉄則(試練)」を通過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が、検察捜査よりもっと厳しいかも知りません。なぜなら、霊界を通して見えない所まで徹底的に取り調べるはずだからです。

〜3大鉄則(試練)〜

「第一に、死ぬほどのことがあったとしても血統を汚してはいけないということです。

第二に、人事処置を誤って、人権を蹂躙してはいけないということです。男性であろうと女性であろうと、黒人であろうと白人であろうと平等です。人権を差別したり、蹂躙してはいけないということです。責任者たちは、自分の心にそぐわないからといって、むやみに人事処置をしてはいけません。

人権を正しく指導するうえにおいては、真の愛、ために生きる愛を持っている者が主流です。天地創造が、そこから始まったのです。その主流思想を乱してしまうことは赦すことができません。罪の中の二番目の罪です。罪のうちに第二回の罪です。

第三に、公金を盗んではいけない、公金を勝手に使ってはいけないということです。

以上の三つです。このすべては堕落したアダム個人と家庭から由来したものです。監獄に入る人の七〇パーセント以上が、この問題でそこにいるのです。監獄に入ってみれば、そうです。人権を蹂躙し、血統を汚し、男女問題に引っかかっています。その次にお金の問題、権力の問題です。お金と知識と権力が恩讐だった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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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年09月17日

【북일국교정상화】가네마루 신 전 자민당 부총재와 문선명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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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우호 야마나시현 대표단, 평양(9/14)
日本語
고 가네마루 신(金丸信) 전 자민당 부총재의 차남인 가네마루 신고(金丸信吾) 씨가 이끄는 '북일우호 야마나시현 대표단' 60여명(조총련 포함)이 14일부터 4박 5일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 중인 가운데, 16일 아베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나 자신이 조건을 달지 않고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마주 보겠다. 다양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결단력 있게 행동해 가겠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오는 28일부터 내달 3일까지 북한에 대표단을 보내 의료 현장 시찰과 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어 회담 재개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90년대 초 북일수교 교섭을 주도했던 가네마루 전 부총재는 90년 9월 다나베 사회당 대표 등과 함께 북한을 방문하여 김용순 북한 노동당 대표와 더불어 3당 공동선언을 채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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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가네마루 부총재, 김일성 주석, 다나베 대표

공동선언은 '36년간 조선인민에게 끼친 불행과 재난 그리고 전후 45년간 입힌 손실에 대한 사죄 및 배상' '조기 국교정상화' '양국 직항로 개설' '재일조선인 법적지위 보장' '여행대상국 중 북한 제외 항목 삭제' '조선은 하나이며 남북대화를 통한 평화통일은 조선인민의 민족적 이익에 부합됨을 인정' '평화롭고 자유로운 아시아 건설과 핵 위협 제거' 등 8개 항목.

이듬해 2월 가네마루 씨는 둘째아들 '신고'를 세 번째로 평양에 파견해 '북일수교를 앞당기는 첩경은 핵사찰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김일성 주석에게 전달했다.

당시는 북한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론이 대두되고 있던 때였다. 그러던 중 동년 12월 통일교회 문선명 선생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과 단독회담을 갖고 '핵에너지는 평화적 목적에만 사용되어야 하며, 북한은 순리적인 국제핵사찰을 받을 것' 등 4개항의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것을 계기로 가네마루 씨는 92년 3월 문선명 선생을 일본에 초청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3월 20일 가네마루 씨가 도치기현 아시카가시에서 연설하던 중 우익으로부터 총격을 받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가네마루 신 씨 저격사건

객석 넷째 열에 앉아 있던 남성이 달려나가며 약 5미터 지근 거리에서 권총 세 발을 발사했다. 그는 도쿄의 우익단체 소속이었다. 가네마루 씨는 다행히 부상을 입지 않았으나 한 발은 연단에 명중돼 2장의 두꺼운 판넬을 뚫고 연단 옆에 떨어져 있었다.

총리와 각료, 당 3역이 연설 중에 저격당한 사건은 전후 처음 발생한 일이었기 때문에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가네마루 씨는 북한과 공동선언 체결 이후 '굴욕 외교'라는 비판을 받으며 자택에 화염병이 투척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 날은 삼엄한 경비 속에 약 50명의 경찰관이 배치돼 있었다.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중에서(1992/4/3)

"가네마루는 나하고 만날 약속을 하고 나를 초청한 사람입니다. 만날 약속을 한 날로부터 1주일 후에 총격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5미터 거리에서 세 발 쏜 총알이 몸에는 하나도 스치지 않고 어디로 다 가버렸어요. 그 사람이 죽었으면 내가 일본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사!

일본 국회의원들은 그 사실을 알고 '정말 그렇구만. 문 총재가 어떤 양반이기에 문 총재를 만나지 못할까봐 죽을 가네마루를 살려주었단 말이냐'라고 하더라구요. 가네마루를 살려 준 것이 가네마루를 사랑해서 살려 준 것이 아니라, 문 총재를 만나지 않으면 일본과 아시아에 사고가 터져 좋지 않겠으니 문 총재 때문에 살려준 것입니다."

문선명 선생은 미국에서 탈세 혐의로 1년 이상의 실형 판결을 받은 전력 때문에, 그때까지 일본의 '출입국관리 및 난민인정법'에 따라 일본에 입국할 수 없었다. 그런데 '동북아의 평화를 생각하는 모임'이라는 국회의원 집회에 참석한다는 명분 아래 특별조치로 14년 만에 입국허가가 내려졌던 것이다.

그 배후에는 가네마루 씨의 법무부에 대한 정치적 압력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가네마루 씨는 '정계의 오야붕'이라고 불릴만큼 자민당 최고의 실력자였다. 1972년 총재 선거에서 다나카 가쿠에이를 밀어 '중일국교정상화'를 성사시켰고, 이후 30조원 이상의 중국에 대한 ODA 개발원조가 실시되었다. 1982년 총재 선거에서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 쓰고 나카소네 야스히로를 밀어 당선시키기도 했다.

이윽고 3월 31일 문선명 선생과 가네마루, 나카소네의 회담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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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가인 아벨과 같은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지성세계를 대표하는 나카소네이고 한 사람은 가네마루입니다. 이번에 가서 이 두 사람을, 가인 아벨을 하나 만들어야 됩니다.

문 총재가 이북 갔다 온 사진첩을 보여 주니까 가네마루가 하는 말이 '하루하루 생사지경을 헤매면서 가족을 만나기를 바라는 1천만 이산가족을 생각하며 가슴아파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볼 때 눈물이 쓱 돌더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 양반이 하는 말이, '내가 1천만 남북 이산가족을 하나 만드는 데 있어서 문 총재와 함께 하나되어 하겠습니다'라고 결의를 표명했습니다.

지금까지 일본은 서구사회에 투자해왔습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돈 벌어 가지고 서구사회에 투자했지만, 그들이 법 조항 하나만 바꾸면 다 빼앗긴다. 그 돈이 먼저 아시아로 안 가면 일본은 망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직접 중국에 투자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의 경제를 먼저 부흥시킨 다음 아시아로 진출하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인데도 불구하고, 일본은 그것도 모르고 자기들끼리 다 해먹겠다고 야단치고 있는 것입니다. 해 보라는 거예요, 나라 꼴이 어떻게 되나" 하고 질책했습니다.

이 때 문 선생은 북한에 1조원을 지원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문 선생이 일본 입국이 불가능한 기피 인물이라는 것과 북한에 대한 보상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일본의 우익세력, 북일수교에 대한 한국 정부의 부정적 태도, 북한의 핵개발 의혹,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본에 대한 미국의 압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일본 정부차원의 북일수교 교섭은 1992년 5월까지 8차례 실시됐으나 아무런 성과 없이 중단되었다. 더우기 북한의 미사일 실험과 간첩선의 일본 영해 침범 등으로 북미 관계는 전쟁 일보 직전까지 치달았다. 또한 가네마루씨는 5억엔의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발각돼 부총재직을 사임하고, 이듬해 3월 탈세 혐의로 체포되었다.

가네마루 씨가 실각하자 나카소네 씨는 북한과 일본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문 선생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문 선생은 일본에 입국하지 못했으며 (2010년 미국 정부를 움직여 일본 정부에 압력을 가하자는 시도가 있었으나 일본 통일교회가 응하지 않아 실현되지 못함), 19년째였던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M9.0의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일본은 인명 피해 2만 명 이상, 재산 피해 최대 1000조원(방사능 처리 비용 포함)이라는 사상 최악의 피해를 입었다. (문 선생이 가네마루 씨에게 제안한 지원금의 1000배에 해당함.)

게다가 최고위험 수준인 '레벨7'을 기록한 후쿠시마 제1원전 1〜4 호기의 방사능 누출 사고로 인해 지금도 끊임없이 방사성 물질이 공기와 태평양 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어 사람들이 '입주'할 수 없는 지역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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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朝国交正常化】金丸信元自民党副総裁と文鮮明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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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朝友好山梨県代表団、平壌(9/14)
한국어
故金丸信元自民党副総裁の次男である金丸信吾氏が率いる「日朝友好山梨県代表団」60人(朝鮮総連含む)が14日から4泊5日の日程で北朝鮮を訪問している中、16日、安倍首相が日朝首脳会談を行う意向を改めて強調した。

安倍首相は「私自身条件を付けずに、金正恩委員長と向き合っていく。あらゆるチャンスを逃さないとの姿勢で取り組んでいく決意である」と述べた。日本政府は、来る28日から来月3日まで北朝鮮に代表団を送り、医療現場を視察し、医療支援方案を模索する計画も推進しており、会談再開への期待が高まっている。

90年代初めに日朝国交正常化交渉を主導した金丸元副総裁は、90年9月に田邊誠社会党代表と一緒に北朝鮮を訪れ、金容淳北朝鮮労働党代表とともに3党共同宣言を採択したことが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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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から金丸元副総裁、金日成主席、田邊誠代表

共同宣言は、「36年間朝鮮人民に与えた不幸や災難、戦後45年間朝鮮人民が受けた損失について、公式的謝罪及び補償」「早期国交正常化」「両国間直行航路開設」「在日朝鮮人法的地位保証」「旅行対象国から北朝鮮を排除する項目削除」「朝鮮は一つであり、南北が対話を通じて平和的に統一を達成することは朝鮮人民の民族的利益に合致すると認める」「平和で自由なアジアを建設するために核の脅威をなくす」など8項目。

翌年2月、金丸氏は次男の信吾を3度目に平壌に派遣し、「日朝国交を早める近道は核査察を無条件受け入れること」というメッセージを金日成主席に伝えた。

当時は、北朝鮮の核施設への米国の先制攻撃論が台頭していた時期であった。そんな中、同年12月に統一教会の文鮮明先生が平壌を訪れ、金日成主席と単独会談を行い、「核エネルギーは平和目的にのみ使われるべきであり、北朝鮮は国際核査察を受入れける」など4項目の共同声明を発表した。

これをきっかけに金丸氏は、翌年3月に文鮮明先生を日本に招待することになる。ところが、3月20日、金丸氏が栃木県足利市で演説中に右翼の銃撃を受けるという衝撃的な事件が起きた。

金丸信氏狙撃事件

客席4列目から男が前に進み、走りながら約5メートルの至近距離から拳銃で3発発射。男は東京都内の右翼団体の構成員だった。金丸氏にけがはなかったが、1発の銃弾が演台に命中。弾は2枚の厚い板を貫き、演台の近くに転がっていた。

首相や閣僚、党三役らが講演中に狙撃されたのは戦後初めだったので大きな衝撃を与えた。金丸氏の北朝鮮との共同宣言は帰国後「土下座外交」と批判を浴びて、自宅に火炎瓶を投げられる事件があった。そのため、このときの県警の警備も厳重を極め、約50人の警察官を配置していた。

文鮮明先生御言選集(1992/4/3)

「金丸は、私と会う約束をして私を招いた人です。会う約束をしたその日から1週間後に銃撃事件が起りました。しかし、5 メートル離れた距離で3発のうち1発も当たらなかったのです。もしそのときに死んだならば、私は日本に入国できなかったでしょう。神様のお陰様です!

その事実を知った日本の国会議員たちは、「本当にその通りだ!果たして文総裁はどんなお方なんだろう?文総裁に合わせるために死ぬ運命の金丸が生かされた」と言ったのです。金丸が生かされたのは、金丸を愛したからではなく、文総裁に会わなければ、日本とアジアに問題が起こるからです。文総裁のために生かされたのです。」

文鮮明先生は、アメリカで脱税により1年以上の実刑判決を受けていたため、それまで出入国管理及び難民認定法の規定で日本に入国できなかったが、「北東アジアの平和を考える会」という国会議員の会合に出席する名目で特例措置で14年ぶりに上陸許可が下りた。

その背後で金丸氏の法務省に対する政治的圧力により入国させたと言われる。当時、金丸氏は「政界のドン」と呼ばれるほど自民党最高の実力者であった。1972年総裁選では、田中角栄を押して「日中国交正常化」を成立させ、それ以降、日本から中国へ総額3兆円を超えるODAが実施された。1982年総裁選では、周りの反対を押し切って中曽根康弘を押して当選させた。

3月31日、文鮮明先生は金丸信、中曽根康弘と会談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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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には、カインとアベルのような人物がいますが、一人は知性界を代表する中曽根氏、もう一人は金丸氏です。今回行ったら、この二人、すなわちカインとアベルを一つに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金丸氏は、私が北朝鮮に行ったときの写真などを見て、「日々生死の境をさまよいながらも、家族に会う日を待ち望んでいる1万離散家族を思いながら胸を痛める文先生の姿を見て涙が溢れた」と話しました。

それだけ関心を持っている人だからです。彼は、「1千万南北離散家族を一つにするために、文総裁と一つになってやっていきます」と決意してくれました。

今まで日本は西欧社会に投資してきました。それで「君たちがお金稼いで西欧社会に投資したが、彼らが法律条項を変えればすべて奪われる。そのお金が先にアジアに来なければ日本は滅んでしまう」と言いました。

しかし、日本は中国に直接投資してはなりません。先に韓国を経済的に復興させてからアジアに向うことが神の摂理であるにもかかわらず、日本は何も知らず、自分たちで好き勝手にやろうとしている。やりたい放題やってみて、日本がどうなるかみてみなさい」と厳しく叱りました。

この時、文先生は1000億円規模の北朝鮮支援策を打ち出したと知られているが、最終的には実現されなかった。文先生が日本入国が不可能な忌避人物であるという事実と、北朝鮮への補償を頑強に拒否した日本の右翼勢力、日朝国交に対する韓国政府の否定的な態度、北朝鮮の核開発疑惑、そして何よりも、日本に対する米国の圧力などが複合的に作用していたものと思われる。

それ以降、日本政府の日朝国交正常化交渉は、1992年5月まで8回実施されたが、何の成果もなく中止された。さらに、北朝鮮のミサイル実験やスパイ船の日本領海侵害などで、米朝関係は戦争の一歩手前までエスカレートした。また、金丸氏は5億円のヤミ献金が発覚し、副総裁職を辞任。翌年3月、脱税容疑で逮捕された。

金丸氏が失脚した後、中曽根氏は北朝鮮と日本を結ぶパイプ役を文先生にお願いしたとされる。しかし、それ以来文先生は日本に入国できず(2010年、米国政府を通じて日本に圧力をかけるという働きもあったが、日本統一教会が動かず実現できなかった)、19年目となる2011年3月11日に発生したM9.0の東日本大震災により、日本は人命被害2万人以上、財産被害最大100兆円(放射能汚染処理費用含む)という史上最悪の被害を被った。(文先生が金丸氏に提案した支援額の1000倍。)

更に、最高危険段階「レベル7」を記録した福島第1原発の1〜4号機の放射能漏れ事故により、今でも放射性物質は空気中や太平洋に継続的に漏れており、人々が「入居」することができない地域になっ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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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年09月12日

일제 검·경찰과 문선명 선생의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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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경찰부(현 광화문 광장)

"하늘의 섭리는 맞고 뺏는 원칙하에 발전한다"

일제 초기의 무단 통치하에서 악명을 떨쳤던 헌병경찰제도는 1910년 9월 조선총독부가 설치되면서 탄생했다. 합병 1년만에 헌병과 경찰 수가 두 배로 늘어 총 1만 4천여명에 달했다. 당시 헌병경찰의 권한은 '긴급한 처분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재판절차 없이 경찰서장이나 헌병대장이 즉결 심판할 수 있는 사법권에까지 미쳤다.

1912년 조선총독부는 '조선형사령'을 발령해 검찰과 경찰이 구속·체포·수색·압수 등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에서는 판사에게만 인정되었던 권한이었다. 이런 막강한 권한은 무엇보다도 조선인들을 보다 쉽게 지배하고 독립운동을 훨씬 수월하게 억압하기 위해서였다.

일제시대는 검찰을 위한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형성된 검찰 문화가 지금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수사권, 기소·불기소권, 형 집행권까지 모든 형사절차를 장악하고 있는 우리나라 검찰은 전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일제시대 조선인들은 유독 경찰에 대한 원한이 깊었다. 독립운동만이 아니라 일상사까지 감시, 탄압함으로써 민중들의 생활에 피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우는 아이 달래던 '호랑이와 곶감'이 '에비! 순사 온다!'라는 말로 바뀌었다.

1944년 11월 문선명 선생은 일본 유학 당시 항일운동을 한 사실이 탄로나 악명 높기로 유명했던 경기도 경찰부(경기도 일원과 서울 4개 경찰서 관할)로 연행됐다. 이곳은 1946년 '고문 경찰' 노덕술이 수사과장으로 임명돼 악명을 떨친 곳이기도 하다. 

"열두 시간 가까이 고문을 받고 피를 토한 적도 있고 15분 동안 사람을 미치게 하는, 평생 잊지 못할 고문도 받았다. '쳐봐라! 그 몽둥이가 부러지나 내 뼈가 부러지나'하며 견뎠다. 한번은 14시간 동안 취조와 구타를 당해 기어서 20m도 가지 못할 만큼 몇 번씩 죽었다 깨어났지만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말씀선집 33권 p116)

이런 상황에서도 선생은 일신의 어려움을 면케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고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아 동료들은 더 이상 잡혀 들어가지 않았다.

광복 직후 한반도에는 2만6677명의 일제 경찰들이 있었다. 그 중 조선인은 약 40%인 1만619명이었다. 이들은 이승만의 비호 아래 친일파 청산을 주장하는 요인을 살해하거나 일제시대와 마찬가지로 감시와 통제 그리고 공안 탄압의 주역이 되었다.

또한 미군정은 행정 경험과 능력을 통한 안정적 사회 운영을 이유로 일제의 판·검사를 그대로 유지했으며, 그들은 사법개혁을 반대하고 기존 체제를 옹호하는 데 앞장섰다. 당시 미군정 법률가들은 남한 사법체제를 '부자와 우파들의 수호신'이라 불렀다.

한편 이승만은 '치안국 특수정보과'(1953년)에서 민간인 사회에 대한 사찰업무를 담당하도록 했다. (*특수정보과→중앙정보부→안기부→국정원)

1955년 7월 4일 문선명 선생은 유효원 통일교회 초대 협회장 등 4명과 함께 경찰 당국에 의해 체포돼 '치안국 특수정보과'(중부서)로 연행된 후 서울지검으로 송치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이 때 검사는 일제 검사 출신인 강서룡이었다.

7.4사건은 당시 이대·연대 등 대학가에서 열화처럼 번졌던 통일교회의 전도 열기에 놀란 기독교계 지도층과 이승만 정권의 일부가 주도한 대대적인 공작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통일교회의 최대 수난이었다고 볼 수 있다.

선생은 형무소장과 구치과장으로부터 천하대악의 주인공으로 온갖 멸시와 조롱을 받았으나 묵묵히 기도로 일관했다. 선생은 영적 직관력으로 형무관들의 비리사실을 지적하고 문책하곤 했으며, 수인들은 몽시 등으로 증거를 받고 선생을 귀한 분으로 존경하기 시작했다. 

약 2주가 지나자 형무소장과 구치과장, 간수들은 용서를 빌며 '선생님'이라 부르고 정중히 모시기 시작했고, 수박 참외 아이스크림을 대접하는 등 모든 편의를 제공했다. 또한 기결수들도 스승처럼 존경하며 비밀을 털어놓고 말씀을 듣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0월 4일 윤학로 주심판사의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선생은 무죄가 선고돼 석방됐고, 유효원 협회장은 벌금 5천환, 유효영, 유효민, 김원필 씨 등은 징역 8개월 형을 언도받았다. 

민족수난의 1번지인 서대문형무소는 지금까지도 온갖 소문으로 통일교회의 명예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현장이기도 하다.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일제당국의 핍박'과 '선생에 대한 기독교계 정부당국의 핍박'은 묘한 섭리적 인연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무죄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이 사건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던가? 민주사회에서 어떻게 소문만으로 종교 지도자를 구속할 수 있었을까? 불명예가 뒤따를 수밖에 없는 미결의 옥중생활을 3개월이나 하게 했을까?

그러나 하늘의 섭리는 맞고 빼앗아오는 원칙 아래 발전되기에, 이 사건을 계기로 신자들은 더욱 일치단결하여 발전은 가속화되었고, 통일교회 교세를 세계화할 수 있는 발판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말씀선집 중에서)

"미군이 들어오면서 한국 정부가 무슨 일을 했느냐 하면 신령한 목사들을 앞세우지 않고 신사참배한 사람들, 즉 영어할 줄 알고 외국에 가서 공부하고 왜정 때 일본 앞잡이 노릇하던 그 목사들을 다시 세운 것입니다. 신사참배한 목사들을 다 제거해 버리고 신사참배 하지 않은 목사들을 중심으로 하나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이승만 박사나 박마리아를 중심한 자유당 사람들이 선생님의 말을 안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한국이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때 선생님의 말을 들었다면 한국이 지금 이렇게 안 되었을 것입니다. 중국 공산당도 다 녹아났을 것입니다.

만일에 이승만 박사가 선생님의 말을 들었다면 소련 공산당은 벌써 내 손에 없어졌을 것입니다. 만약 이 사상을 40년 전에 한국이 받아들였더라면 일본은 한국과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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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年09月01日

통일사상이란?

오늘날 세계는 일찍이 없었던 대격변을 경험하고 있다. 세계적화를 표방하며 20세기의 세계를 뒤흔들었던 소련 제국이, 1991년 8월 보수파의 쿠데타를 계기로 '소련의 사멸'이라는 충격적인 사태를 맞이했다.

그리고 소련을 인수한 러시아 공화국 옐친대통령은, 1992년 6월 미국을 방문한 후 상하 양원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서 '공산주의는 사멸했다'고 선언하고, '우리나라에서 공산주의를 다시 부활시킨다는 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에서 해방된 구 소련은 아직껏 가야할 방향을 상실한 채 혼란과 경제적 파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일부 국가는 경제 개혁과 개방을 부르짖으며 동시에 사회주의 제도와 공산당독재를 견지하는 모순을 내포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한편 민주주의 세계의 기수인 미국은 걸프전의 승리의 영광은 잠시였을 뿐, 방대한 적자 경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급속도로 지도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공산주의의 이상은 땅에 떨어지고, 민주주의 세계에서는 강력한 리더가 사라진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는 민족과 종교의 대립에 의한 분쟁, 경제마찰 등이 분출하고 있으며, 이러한 혼란을 틈타 각종 복구주의마저 대두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AIDS가 만연하고 소말리아 등 후진국에서는 빈곤 문제가 더 심화되고 있어 인류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이와 같은 혼란과 불안 속에서 세계는 지금 인류를 이끌 새로운 이념과 지도력을 절실히 갈망하고 있다.

'통일사상'은 '하나님주의' 또는 '두익사상'이라고도 불리운다. 하나님주의란,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을 핵심으로 하는 사상이라는 뜻이며, 두익사상이란 우익도 아니요 좌익도 아니며 '더 높은 차원에서 양자를 포용하는 사상'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한 새로운 가치관에 의한 '애타정신'으로 좌익사상인 공산주의의 증오심, 투쟁심 및 물질주의를 제거하고, 우익사상인 민주주의의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주의를 제거하여 '대립하는 양자를 화해'시키고, 공동으로 하나님과 인류의 숙원인 이상세계의 실현을 향하여 전진할 수 있도록 이끌기 위한 사상이 바로 하나님주의이자 두익사상이며 통일사상인 것이다.

더 나아가 통일사상은 인류의 부모요 모든 종교를 설립한 최고의 중심인 하나님의 '참사랑'으로, 대립하는 민족과 종교를 화해시켜 '인류 한가족' 이념을 실현함과 아울러, 인류의 모든 '난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이상세계를 창건하고자 하는 사상이다.

따라서 어떠한 난문제라 하더라도 통일사상(하나님주의)을 적용한다면 쉽게 또 근본적으로 풀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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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年08月25日

聖人迫害と国家的蕩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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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迫害)崔濟愚(崔水雲)先生は、イエス以降の主流摂理を西洋から東洋に移す第一使命者として、神と人間の一体関係を明らかにした「侍天主」思想を中心とした「東学」を提唱したが、イエスが既得権勢力によって処刑されたように、先生も「惑世誣民」という無実の罪をきせられ、斬首刑に処された。

(蕩減)1895年、韓国の国母・明成皇后が日本の刺客の刀で暗殺され、1905年に乙巳保護条約(日韓保護協約)が締結さ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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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迫害)1908年、甑山教の創始者カン・イルスン(カン・ズンサン)先生は、韓国各地を回りながら来るべき天の摂理に備えるべく「天地工事」を行っていたが、日本の警察は、「義兵を起こそうと企てている」という疑いで先生を逮捕した。先生は吊り下げられた状態で鞭打ちされ、その後遺症によって翌年死亡した。

(蕩減)1910年に日韓併合条約が締結され、1923年にM7.9の関東大震災で105、000人以上が死亡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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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迫害)1944年10月から1945年2月まで4ヶ月間、日本の警察は、統一教会・家庭連合の創設者、文鮮明先生を拷問した。

1944年10月、日本の警察は突然文先生の新婚の家にやって来て連行して行った。共産主義者として引っ張られていった友人の口から、文先生の名前が出たことが理由だった。

警察:「お前も共産党だろう?内地に留学して、そいつと同じ仕事をしただろう?こんなところで犬死にしないように、共産党の奴らの名前を全部吐くことだな!」

先生は、机の脚4本が折れるほど鞭打ちされたが、最後まで口を開かなかった。拷問は、とても言葉で言い表せないほど残酷だった。

警察は、先生の家で発見された日記帳に名前が書かれていた友人たちも共産党ではないか白状しろと迫ったが、先生は死を覚悟して知らないと突っぱねた。

彼らは鋲を打った軍靴で先生の体を容赦なく踏みつけ、死んだようにぐったりすると、精肉店の肉塊と化した先生の体を天井に吊るして揺らした。先生の口から鮮血がほとばしってコンクリートの床を濡らした。

何度も気を失い、そのたびにバケツ一杯の冷水をかけられ、意識が戻ればまた拷問を始めた。鼻をつまんで、洋銀製のやかんを口の中に突っ込み、大量の水を無理やり飲ませる水拷問もあった。床に倒れた後、カエルのように膨れ上がったおなかを軍靴で踏みつけた。

食道を通って上がってきた水を吐き出すと、目の前が真っ暗になって何も見えなかった。そんな拷問を受けた日は、食道が燃えるように痛み、水っぽい汁でさえ一口も喉を通らず、剥き出しの床に力なく俯せになって、ぴくりとも動けなかった。

業を煮やした警察は、最後の手段として先生の母親を呼んで面会させる作戦に出たが、警察の意図を知った先生は「少しだけ我慢すれば、この時代は間もなく終わります。遠からず日本は滅びますから、泣かないでください」と母を慰めた。

(蕩減)1945年8月6日広島、9日長崎原爆投下で129、000〜246、000人以上が死亡し、その後日本は放射能の後遺症に悩まされている。


(迫害)日本政府は、文先生が脱税の罪で米国ダンベリー刑務所に収監され、13ヶ月間服役したことを理由に20年以上日本への「入国」を拒否した。

(蕩減)2011年3月11日に発生したM9.0の東日本大震災により、人命被害2万人以上、財産被害25兆円という史上最悪の被害を被った。

また、最高危険段階「レベル7」を記録した福島第1原発の1-4号機の放射能漏れ事故により、今でも放射性物質は空気中や太平洋に継続的に漏れており、人々が「入居」することができない地域になっ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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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聖人) 핍박과 국가적 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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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語
(핍박) 최제우(최수운) 선생은 예수님 이후 주류섭리가 서양에서 동양으로 옮겨지는 제1대 사명자로서 하나님과 인간의 일체관계를 밝힌 시천주(侍天主) 사상을 중심으로 '동학'을 창시했으나, 예수님이 기득권 세력에게 처형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 또한 '혹세무민'한다는 죄목으로 '큰 칼'로 목을 베이는 참형을 당했다.

(탕감)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 자객들의 '일본도'로 살해당하는 국가적 탕감을 치르게 되었고,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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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박) 1908년 증산교 창시자 강일순(강증산) 선생이 장차 이루어지게 될 섭리도수에 맞춰 전국 각지를 돌며 천지공사(天地公事)를 수행하던 중, '의병을 일으킨다'는 죄목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공중에 매달린 채 '몰매'를 맞아, 이듬해 '골병'으로 돌아가시게 됨.

(탕감) 1910년 한·일합방. 1923년 M7.9의 관동대지진으로 105,000명 이상이 사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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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박) 1944년 10월부터 1945년 2월까지 4개월간 일본 경찰이 통일교회·가정연합 창시자 문선명 선생을 '빨갱이'로 몰아 고문함.
 
1944년 5월 선생의 신혼집에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이 선생을 연행함. 연유는 빨갱이로 몰려 잡혀간 친구의 입에서 선생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일경: "네 놈도 빨갱이 맞지? 쓸데없이 개죽음 당하지 말고 빨갱이놈들 이름 다 불어!"

책상다리 네 개가 부러지는 잔혹한 '몰매' 고문을 당했지만, 선생이 끝까지 입을 열지 않자 고문은 날로 더 잔혹해졌다.

경찰은 흑석동 신혼집을 뒤져 선생의 일기장에 적힌 친구들 이름을 대며 실토하라고 고문했다. 징을 박은 군화발로 온 몸을 사정없이 짓이겨 축 늘어진 몸을 정육점 고기처럼 천장에 매달아 놓고 흔들었다. 선생의 입에서 쏟아진 피가 시멘트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정신을 잃으면 다시 찬 물을 끼얹고 고문을 시작했다. 물고문은 코를 잡고 주전자를 입에 쑤셔넣어 배가 개구리처럼 부풀어오르면 바닥에 쓰러뜨려 놓고 군화발로 사정없이 짓밟았다. 목으로 넘어온 물을 다 토하고 나면 눈앞이 깜깜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온 몸에서 기운이 다 빠져 바닥에 엎드린 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고문을 하다 하다 지친 경찰은 최후 수단으로 선생의 어머니를 불러와 반신불수의 선생과 상봉시켜 모정을 흔드는 간계를 꾸미기도 했다. 경찰의 의도를 알아차린 선생은 "조금만 참으면 이 시대는 곧 끝납니다. 머지 않아 일본은 망하니 울지 마세요"라고 어머니를 위로했다.

(탕감)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 원폭투하로 129,000-246,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이후 일본은 방사선 후유증으로 골병을 앓게 됨.


(핍박) 일본 정부는 문선명 선생이 탈세혐의로 미국 댄버리교도소에 수감되어 13개월 동안 복역한 사실을 이유로 20년 이상 일본 '입국'을 불허함.

(탕감) 2011년 3월11일 발생한 M9.0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2만명 이상의 인명 피해와 250조원에 달하는 역사상 최악의 재산 피해를 입음.

또한 최고위험 단계인 '레벨 7'을 기록한 후쿠시마 제1원전 1-4호기의 방사능 누출 사고로 인해 지금도 방사능 물질이 공기와 태평양으로 지속적으로 누출되고 있어 사람들이 '입주'할 수 없는 지역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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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年08月13日

한민족의 일제 치하 40년 고역

[원리강론 p554] 1895년 황궁에 침입하여 왕비를 학살하는 등 잔학무도한 일을 자행하기도 했던 일본의 한국에 대한 제국주의적인 침략의 손길은 을사보호조약에 의하여 뻗쳐졌다.

즉 1905년에 일본의 이등박문과 당시의 한국 학부대신이었던 친일파 이완용 등에 의하여 한국의 외교권 일체를 일제의 외무성에 일임하는 조약이 성립되었다.

그리하여 일본은 한국에 통감을 설치하고 필요한 지역마다 이사관들을 두어 일체의 내정을 간섭함으로써, 사실상 조선의 정치, 외교, 경제 등 주요 부문의 권리를 박탈하였던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을사보호조약이었다.

1910년, 일본이 강제로 조선을 합병한 후로는 한민족의 자유를 완전히 박탈하여 수많은 애국자들을 투옥 학살했고, 1919년 3·1운동 때에는 전국 도처에서 수많은 양민을 살육했다.

더구나 1923년에 일어난 관동대지진 때에는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를 퍼트려 동경에 거주하던 무고한 조선인들을 부지기수로 학살했다.

한편 수다한 한국인들은 일본의 학정을 견디다 못해 기름진 고국산천을 일본인들에게 내주고, 자유를 찾아 황막한 만주벌판으로 이민하여 와신상담의 세월을 보내며 조국광복에 진력하였다.

일본군은 이러한 한민족의 여러 부락을 찾아다니며 노인에서부터 유아에 이르기까지의 전 주민들을 한 건물 안에 감금하고 방화하여 몰살시켰다. 일본은 이 같은 학정을 제국이 멸망하는 날까지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3·1운동에서 혹은 만주벌판에서 쓰러진 민중은 주로 기독교 신도들이었다. 제국 종말기에는 기독교 신도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여 이에 따르지 않는 수많은 신도들을 감옥에 가두어 죽였다.

그 뿐만 아니라 8·15해방 직전 일제의 기독교 탄압정책은 실로 극악무도한 것이었다. 그러나가 일본 천황이 패전을 선언함으로써 한민족은 드디어 그 굴레로부터 해방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한민족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 이후 1945년 해방될 때까지 40년간 제1, 제2이스라엘 선민이 이집트나 로마제국에서 당한 것에 못지 않는 박해를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독립운동은 주로 국내외 기독교 신도들을 중심하고 일어났으며, 박해를 당한 것도 주로 기독교 신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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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年07月19日

韓国を祝福する為の蕩減条件

한국어
経済祝福の天運は、日本を経て韓半島に流れて行くようになっているのです。

ある知韓派日本人の言葉の如く、昔は韓国が悔しくても我慢するしかなかったが、今は大きくなったので、日本に食って掛かる現象が起こり始めているのです。

慰安婦問題や徴用問題、福島産農産物WTO提訴、哨戒機葛藤、半導体などの先端技術、法律、外交等々全分野にわたって日本を凌駕するレベルまで成長したからです。

今回の「輸出規制」は、日本の言うことを聞かなかった朴槿恵政府の初期頃から企画され、本当に言うことを聞かない文在寅政府に来て、堪忍袋の緒が切れたかのように爆発したわけです。

しかし、「輸出規制」は日本が「生意気な奴!」と韓国のお尻を叩くような行為だが、結局は「打たれて奪ってくる原理」に基づいて、経済祝福を韓国に完全に引き渡すための蕩減条件になることでしょう。

このような堂々たる歴史の流れを人間の力で食い止めることはできないものの、安倍首相は自分も知らないうちに悪役を熱演しているところ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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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축복하는 탕감조건

日本語
경제축복의 천운은 일본을 거쳐 한반도로 넘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지한파 일본인의 말처럼 예전에는 한국이 억울해도 말을 못 하더니, 이제는 어른이 되어 일본에게 덤벼든다는 겁니다.

위안부 문제나 징용 문제, 후쿠시마산 농산물 WTO 제소, 초계기 갈등, 반도체 등 첨단산업, 법률, 외교 등등 전 분야에 걸쳐 일본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수출규제는 일본의 말을 안 듣기 시작한 박근혜 정부 초기 때부터 기획되었다가, 정말 말 안 듣는 문재인 정부 때 와서 폭발한 겁니다.

그러나 '수출규제'는 일본이 '건방진 놈' 하고 한국의 엉덩이를 후려치는 격인데, 결국은 '맞고빼앗는 원리'에 따라 경제축복이 한국으로 완전히 넘어오는 탕감조건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순 없는 법이며, 악역을 맡은 아베 총리는 자기도 모르게 열연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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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年02月28日

【3.1운동 100주년】유관순 열사와 문선명 선생/오택룡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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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때 희생당한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유관순보다도 더 큰 역할을 하다가 고통과 죽임을 당한 사람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유관순의 이름이 그렇게 유명해졌을까? 그것은 그녀가 이끈 3.1운동이 바로 문선명 선생의 잉태와 직접적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음력 3월 1일, 바로 이 날 선생께서 잉태되셨기 때문이다.(말씀선집 179권)

유관순이 중심이 된 독립만세 운동은 비록 하루밖에는 안 했지만, 하나님이 바라보실 때에는 참으로 이 땅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되었다.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불렀으며, 나라를 찾기 위해 피를 흘리며 몸부림쳤고,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가서 "여기에 한국이 있다"라고 한국말로 외쳤다.(180권)

더구나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할 때 그녀의 나이는 16세이였다. 선생께서는 타락할 때의 해와의 나이가 16세였다고 하셨다.  그래서 유관순은 바로 타락 전 해와의 입장을 탕감복귀하는 것과 같은 입장에서 이 운동을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관순 열사는 바로 메시아가 지상에 착지할 수 있게 했던 장본인이다"라고 말씀하시고(181권), 진정한 의미는 모른다 할지라도 모든 한국 사람들이 매년 3월 1일만 되면 그녀를 '유관순 누나'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2,000년 전의 예수님은 성령에 의하여 잉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마 1:18).  그 성령 잉태라고 하는 것은 그 당시의 영웅설화에 근거하여 예수를 영웅 중의 영웅으로 소개하기 위한 설명 방법이었다.(182권)

선생의 잉태와 탄생에도 이에 못지 않는 이야기들이 전해져온다. 충모님이 아버님을 잉태할 당시 두 마리의 흰 용을 실질적으로 보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사실 여부보다는 그 의미가 중요하다. 

신비스런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선생께서 탄생하기 직전까지 3년간에 걸쳐 금조(金鳥)가 집 앞에 있는 노간주나무 위에 날아와 앉곤 하였다는 것이다. 이 금조의 출현은 특별한 징조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는데, 선생께서 태어나신 후로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184권)

잉태로부터 정확히 10개월이 지난 1920년 음력 1월 6일에 태어나셨고, 이로부터 16년이 지나서 소명을 받으셨다. 타락 당시의 아담의 나이를 16세 정도로 본다면, 16세 때의 소명은 아담의 타락하기 전의 시기가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제2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17세 때 세례요한의 여동생과의 결혼을 처음으로 마리아에게 부탁한 적이 있다.(185권) 16세 때의 소명은 이러한 예수님의 입장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제3 아담으로 오신 선생께서 제1 아담의 타락 이전의 나이에서 소명 받으셨음을 의미하며, 제 2아담이신 "예수님이 장성할 때까지의 승리적인 기반 위에서 섭리를 출발하셨다"는 사실과도 깊은 관련성이 있다.(186권)

16세 때의 소명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남과 동시에 공생애를 출발하기 위한 10년간의 준비기간과도 관련된다.(187권)

선생은 한국의 많은 지역 가운데에서 특별히 정주군 덕언면 상사리에서 태어나셨다. 이 지역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묘두산이 있다. 강감찬 장군이 거란군을 진멸시킨 곳이 바로 이 곳이며, 몽고군을 강한 정신력과 기지로 격퇴시켰던 곳도 바로 정주였다.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군과 일본군이 초기에 격돌했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정주는 3.1운동의 진원지이자 격전지이기도 했었다. 민족 대표 33인에 속한 이승훈, 이명룡과 김병조의 고향이다. 또한 민족 운동의 요람지 오산학교의 소재지였고, 3.1운동의 주요 세력인 기독교와 천도교의 교세가 강력하던 고장이었다.

정주가 3.1운동의 진원지이자 격전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의 종교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  평안도는 기독교의 발상지이자 교세가 가장 왕성한 곳이기도 했다. 1919년도의 조선 기독교인 가운데 약 36%가 평안도 출신이었으며, 1932에는 30% 정도가 평안도 출신이었다.

이들이 나라에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은 메시아 대망(待望) 사상 때문이었다. 평안남도 안주 출신의 길선주 목사의 계시록에 근거한 부흥회와 전국적으로 전개된 백만구령운동(百萬救靈運動)은 곧 메시아 강림과 함께 조선의 독립이 이루어진다는 확신 때문에 일어난 운동이었다.(197권)

3.1운동 민족대표 48명 중 6명이 정주 출신이며, 선언문을 기초한 5명 중 한 사람이 문윤국 목사이다.  1910년 12월, 105인 사건으로 알려진 테라우치 총독 암살미수 사건에 관련된 105인 중 44명이 정주 출신이었다.  

이처럼 정주는 불의를 보고는 참지 못하는 역사를 가진 지역으로 손꼽혔으며, 3.1운동의 격전장이 말해 주듯 민족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켰던 지역이기도 하다. 천도교와 기독교가 왕성했던 지역으로 메시아 사상이 극도에 달했으며, 이 사상에 근거하여 민족의 갈 길을 열었던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기도 했다. 

상사리(上思里)란 위를 생각한다는 뜻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는 동네라는 뜻이다.(20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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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에게 최고등급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서훈, 백범기념관(2/26)
지난 1962년 건국훈장 3등급 서훈 이후로 저평가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유관순 열사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유관순 열사가 3·1 독립운동의 표상으로 국민들 속에 각인돼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1등급 훈장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며 재평가했다. 지금까지 건국훈장 1등급을 받은 여성 독립운동가로는 장개석 전 타이완 총통의 부인 송미령 여사가 유일하다.
PicsArt_03-06-07.43.43.jpg【유관순 열사】'재림주 탄생을 위한 민족적 제물' '사탄분립을 위한 피흘림'
재림 메시아 중심으로 본 민주화 운동의 섭리적 의의
【종북 vs 극보수】악이냐 차악이냐
인간 우상화냐 하나님주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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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年02月27日

【혈통신학】자체자각과 타락성근성

http://m.blog.daum.net/jyc1379/6958737?tp_nil_a=1

"가인이 자기중심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아벨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던 동기는 제사문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사랑의 문제였습니다.

아담과 해와도 부모이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자기들 멋대로 사랑을 했던 것이 타락이었듯이, 가인이 아벨을 죽이게 된 동기도 자체자각인데, 그 실질적인 동기는 부모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가 원하는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서 아벨을 죽였다 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을 하고 나서 첫 번째 낳았던 아들이 가인이고, 가인을 낳을 때에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여자였는데 얼굴이 예뻤습니다.

그리고 아벨을 낳을 때에도 여자 쌍둥이를 낳았는데 그 여자는 못생겼습니다.

처음부터 아담과 해와는 가인은 미워하고 아벨은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동쪽 끝과 서쪽 끝에서 따로 따로 살게 했는데, 어느 날 아담 해와가 상의를 하여 가인을 못생긴 여동생과 결혼시키고 아벨은 예쁜 여동생과 결혼시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타락한 천사장 누시엘이 듣고 가인에게 일러 바쳤습니다. 그래서 가인은 예쁜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서 아벨을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문제와 결부되어 아벨을 죽인 것입니다. 아벨을 죽인 동기가 자체자각 때문이었습니다. 부모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이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일 때는 가정을 가질 때였고 나이가 30~40대이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에 하나님이 아벨을 통해서 하려고 했던 섭리는 중단되고 그 때에 아기씨를 다시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이어갈 수 있는 아들의 아기씨를 다시 주는데 셋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해와는 아벨이 죽은 다음에 셋을 임신합니다.

그래서 셋은 실질적으로 셋째 아들이 아니라 섭리적인 셋째 아들인 것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는 항상 사탄의 섭리보다 한 세대가 뒤집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가인이 아벨을 죽이자마자 예쁜 여동생하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가졌을 때,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에게 셋을 임신하게 해서 섭리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가졌을 때 개인 레벨이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가정을 가지면 사탄은 종족이 되고, 종족이면 사탄은 민족이 되어서 항상 하나님의 섭리는 사탄의 섭리를 한 단계 뒤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하나님보다 항상 한 단계 앞서갔던 섭리가 역전되는 순간이 1998년 6월 13일 날 메시슨스퀘어 가든에서 있었던 축복식, 3억 6천만 쌍 제1차 축복인 1억 2천만 쌍 축복식을 통하여 사탄이 한 세대 앞서가던 섭리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을 기점으로 해서 가인과 아벨의 싸움이 끝났다라고 선포했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말씀입니다.

그날까지는 하나님이 사탄의 뒤꽁무니를 따라갔다가 그날을 통해서 평행을 이루고 역전되는 섭리가 진행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도 타락이라는 것입니다. 아버님이 정의하는 타락은 자체자각입니다.

'우주의 근본을 찾아서'에 보면 타락은 자기자각이라고 했습니다. 타락을 통해서 자기가 생긴 것입니다. 원래는 자기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개성 완성한 인간에게는 자기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자기라는 개념이 가인에게서 생겼고 그래서 타락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적인 관계를 해야만 타락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자기가 살아있는 한, 어떤 상황을 판단할 때 자기중심의 생각이 들 때엔 언제든지 타락성 본성을 가진 존재이구나 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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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국 통일용사】'목계' 싸우지 않고 이긴다>

2019年02月26日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자동기술로 인간이 일하지 않는 시대

앞으로의 세계는 새로운 국제경제기구 및 질서의 탄생으로 비약적인 경제발전이 가능해지며, 인류는 풍족한 경제생활에 따른 시간적 여유를 레저(leisure)에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인류는 대자연을 이해하고 배우며, 그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인종과 국적을 초월하여 서로 사랑하고 위하며 참된 삶을 즐기는 이상세계가 반드시 오고야 만다는 것을 본인은 확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사업은 레저산업이 됩니다. 기술사업 시대는 자동기술로 말미암아 인간이 일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그런 때가 옵니다. 지금도 그렇게 되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버튼만 누르면 기계가 일을 합니다. 몇천 명이 작업하던 공장이 서넛만 가지고 밤낮 생산품을 내놓을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무슨 산업이 벌어지느냐? 그것이 흥행산업, 유행산업, 이런 레저산업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경제적 기반을 닦을 수 있는 좋은 때가 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남북통일과 세계평화
천주성화 5주기를 맞이하여
하나님•인류•만물의 한(원통함•비통함•고통)을 풀어주는 효자•효녀
【천일국 한중일 여수 해원제】영육합동 해양섭리 본격 시동, 한일•남북관계 푸는 계기 될 것
남북통일을 위한 초종교 파트너십과 영적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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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선집 228권】해와국가 일본의 사명 "민단과 조총련 하나로 만들어야"

해와 안에 가인과 아벨이 있었듯이, 리브가의 뱃 속에 에서와 야곱이 있었듯이, 다말의 뱃속에서의 베레스와 세라같이 쌍둥이가 싸우는 것이 일본 안에도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북한과 남한의 조총련과 민단입니다. 그것을 일본이 소화해야만 돼요. 복중에 있는 베레스와 세라같이, 한 민족을 대표한 두 나라를 하나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반도를 남북으로 갈라 놓은 것이 일본입니다. 좌우익은 아들입니다. 한반도에서 통일권만 벌어지면 민주주의의 서양 문명과 아시아 문명이, 좌우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복 받는 자리에 세움으로 말미암아 통일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을 통일하는 데에 경계선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조총련과 민단을 하나로 만들지 않으면 해와국가 일본이 설 수 없습니다. 그들 전부가 선생님을 대환영함으로 말미암아 선생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해와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민단과 조총련이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남북의 실체인 남한과 북한이 자동적으로 하나가 되면... 한-일 통일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게 섭리관입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말씀선집 103권】신본주의, 인본주의, 물본주의 소화해야 이상 실현돼
【말씀선집】김일성 "3만쌍 합동결혼식을 진짜 하느냐"
누구나 세상을 바꾸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
통일교인들이 사회통합과 세계평화를 위하는 길
【통일뉴스】평화자동차 조성락 이사 인터뷰(2003.9.7)
【문선명 선생 말씀선집】"위하는 참사랑으로 평화세계를 창건하자" (469권 p9-21)
【천주평화연합】문선명 선생 창설 메시지 "하나님의 이상가정과 평화세계의 모델"
참사랑 철학이 김일성 주석과 문선명 총재의 만남을 가능하게 했다
【애국지사 금산 문윤국 선생】"남북 사이에 평화가 올 날이 이제 멀지 않았으니 너무 근심 말아라"
【문선명 선생】하나님에 미쳐 사신 분
【경제평준화】인류구원의 모델 제시한 문선명 선생
【말씀선집】잘사는 미국이 못사는 소련을 먹여 살려야
【말씀선집】앞으로 정치체제는 없어지고 경제 평준화가 이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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